▶ 고교 졸업 두 달 전 집 앞에서 총격 당한 10대
▶ 다리는 못쓰게 되었지만 “난 여전히 같은 사람”

조나단 애닉스가 걸프렌드 신시아 발렌틴과 함께 프롬파티에 가기 위해 집 앞에 나와 있다. 고교의 트랙과 크로스컨트리 선수이던 그는 지난 4월 어느 날 밤 집 앞에 파킹한 차에 둔 셀폰 충전기를 가지러 나왔다가 괴한의 총에 맞은 후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세계적인 경제ㆍ문화 도시로 꼽히는 시카고는‘이라크 전쟁터 같은 총기폭력 도시’라는 오명 또한 안고 있다. 유명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가 지난해, 총기폭력이 만연한 시카고 남부 흑인 밀집지역을 이라크 전쟁터에 비유한 영화‘시라크’(Chi-Raq)를 제작ㆍ개봉 했을 정도다. 금년 1월 한 달간 최소 292명이 총에 맞고, 50명이 살해(흉기 살인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2배나 늘어난 숫자다. 그것은 그저 통계 숫자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사랑하는 가족과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꿈을 꾸며 살던 사람들이다.
총기폭력 만연 시카고, 이라크에 비유 ‘시라크’
1월 한 달간 292명이 총에 맞아, 작년대비 2배
이건 슬픈 스토리가 아니다. 스토리의 주인공 조나단 애닉스가 어느 누구도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같은 사람인 걸요, 그저 다리를 잃었을 뿐이지요”지난 4월 어느 날까지 그는 자신의 두 다리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학교 가는 날이면 아침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의 우수공립학교 월터 페이튼 칼리지 프렙까지 전철을 타고 갔다.
그가 사는 남쪽에 비해 여러모로 좋은 지역에 위치한 페이튼에서 그는 트랙과 크로스컨트리를 즐겼다. 아름다운 호수와 활기찬 도시 풍경을 보며 늘 달렸다. 조나단은 걸프렌드와 함께 몇 시간씩 시카고 도심지역을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그는 농구도 했고 엄마와 달리기도 했으며 자전거를 도둑맞기 전까지는 자전거도 즐겨 탔고 어린이들의 플로어 하키 코치도 했다. 두뇌를 쓰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댄스와 방송 저널리즘에서 드로잉과 페인팅까지 무엇이든 좋아했다.
고교 졸업을 두 달 앞둔 그날 밤 그는 총에 맞았다.
페이튼 고교의 프롬파티 하루 전인 지난 주 목요일, 그의 가족은 분주해 보였다. 한 살 아래 동생 조슈아(17)와 아버지 마이클이 조나단의 턱시도를 찾으려고 함께 나서는 길이었다. 턱시도는 총격전에 맞춘 것이지만 크게 손 볼 데는 없었다. 그러나 밴을 타고 내리는 것은 큰일이었다. 조슈아가 그를 안아 태운 후 휠체어를 접어서 뒷자리에 넣었다. 비디오게임에서 자동차,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모든 면에서 우러러 보던 형의 일상을 이젠 그가 돌보게 된 것이다.
“준비 됐지?”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가 물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들의 삶을 뒤흔든 총격이 일어났던 그곳으로.
마이크와 허린다 애닉스 부부가 세 아들 -조나단, 조슈아, 제이콥 -을 키우며 사는 동네는 늘 멕시칸 음악소리가 들리는, 주민들이 문 앞 층계에 앉아 있거나 주말이면 집 앞에서 바비큐를 하는 오래된 동네였다. 정다운 동네이지만 골목 밖은 아이들을 내보내기가 두려운 위험한 지역이기도 했다. 애닉스네 세 형제는 동네 주변에서 놀지 않았다. 아들들이 보다 건전하고 긍정적인 세상에서 살기 원한 부모는 늘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 경기장을 찾거나 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보호했다.
4월9일 토요일 밤, 온 가족이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갔다가 늦게 귀가했다. 조슈아는 지하실 침실에, 조나단은 부엌 옆 작은 방에, 제이콥은 리빙룸 소파 베드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부모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1시 경, 조나단은 셀폰 배터리가 다 된 것을 보고 집 앞에 세워놓은 자동차에 둔 충전기를 가지러 나갔다.
후에 조나단이 경찰에 진술한 바에 의하면 그가 앞 승객석에 앉아 충전기를 찾을 때 얼핏 그림자가 느껴져 쳐다보았다고 했다. 몇 발의 총성을 들었고 차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으며 핏자국을 본 듯하다고 말했다.
리빙룸에 있던 제이콥(13)은 총소리를 들었다. “아, 또 갱들이 총질을 하나보네”라고 생각했다. 늘 그랬으니까.
그러나 곧 지하실에서 조슈아가 뛰어 올라왔다. 총격범이 사라진 후 가까스로 배터리가 죽어가는 셀폰을 들어 조나단이 전화를 한 것이다. 곧 온 식구와 골목 전체 이웃이 집 앞 넓은 잔디밭으로 달려 나왔다.
“너 다쳤어? 누구 짓이야? 아빠가 너 안아 올릴까?” 고함치며 울부짖는 아버지에게 “아빠, 진정해, 소리 지르지 마, 나 총 맞은 것 같아”라고 말한 조나단은 정신을 놓았다.
두 다리가 마비된 그는 재활을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내리는 법, 몸을 일으킬 때 팔꿈치가 아닌 어깨를 사용하는 법, 바지를 입는 법…다음 몇 주 동안 재활센터는 그들 가족에게 제2의 집이 되었다.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낮 동안 아들과 함께 잊기 위해 새벽 2시에서 오전 10시까지의 야간근무를 택했고 은행원인 엄마도 근무시간 외엔 센터에서 살다시피 했다.
드디어 며칠 전 조나단은 센터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의 통로와 방은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조나단에겐 너무 좁았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일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건 동생 조슈아의 몫이었다.
걸프렌드 신시아의 도움으로 고교를 무사히 마친 조나단은 이번 가을 드폴대학에 입학한다. 조나단이 좀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집으로 이사도 가야하고, 보다 성능 좋은 휠체어도 마련해야 하며 장애인 보조장치가 부착된 자동차도 필요하다. 언젠가는 경찰이 도주한 총격범을 체포할 지도 모르지만 조나단에겐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금요일 오후 엄마의 도움을 받아 샤워를 하고 턱시도를 입은 조나단에게 조슈아가 빨간 타이를 매주었다. 휠체어에 앉아 신시아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조나단은 핸섬하고 강해 보였다. 어떤 총탄도 자신의 꿈까지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조나단은 프롬파티장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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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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