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례문화 변화로 경영난 묘지업계의 화려한 변신
▶ 가톨릭교회 미사 와인 제조 “환상적인 맛” 수상 잇달아

로버트 실리그 가톨릭 운영서비스의 최고책임자가 홀리 세펄커 묘지의 포도나무들을 점검하고 있다.

홀리 크로스 묘지의 예수상. 무덤과 포도밭의 중간 지점에 서있다.

홀리 세펄커 묘지에서 자라고 있는 포도송이.
1,000달러만 더 내면 사랑하는 가족을 태양 아래 빛나는 샤도네 포도나무 근처에 묻을 수 있다. 원한다면 피노 누아 나무 옆도 가능하다.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이스트 베이에 있는 묘지의 이야기다. 이곳 홀리 세펄커 묘지(Holy Sepulchre Cemetery )에서 포도나무를 심은 것은 10년전이었다. 포도나무가 잔디보다 값이 싸고 물도 절약되기 때문에 심은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가 어딘가, 황금과 포도의 땅인 캘리포니아에 장식용으로 심은 포도나무들이 지금은 대회에서 상을 타는 와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과 같습니다”라고 오클랜드 로마 가톨릭 교구의 마이클 C. 바버 주교는 말했다. 이 교구는 이곳을 포함한 3개 묘지의 16에이커 포도밭을 관장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와인 이름은 처음에 ‘빛의 그리스도 대성당’(Cathedral of Christ the Light)이라고 불렸으나 2013년에 교회 관리들이 훨씬 산뜻하게 ‘주교의 포도원’(Bishop’s Vineyard)으로 레이블을 바꿨다.
묘지에서 포도밭을 경작하는 데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묘지를 찾는 사람들이 포도나무를 보면 묘지를 더 이상 슬프고 무서운 곳으로 보지 않습니다”라고 바버 주교는 말했다.
요즘 묘지 업계는 재정 면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미국인들의 장례 문화가 바뀌면서 거의 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매장보다 화장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헤이워드 묘지에서는 1,300건의 매장이 있었다. 1980년 2,500건이었던데 비하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박물관 가듯이 묘지를 방문하지요”라고 교구내 묘지들을 관리하는 로버트 실리그 가톨릭 운영서비스의 최고책임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와인에 이끌려서 묘지로 들어오면 그로 인해 다른 이야기 거리도 찾게 될 겁니다”
근래 미국의 묘지들은 방문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창안해내고 있다. 무덤가에서 콘서트를 연다든가 공포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채플에서 자선모금 달리기대회와 요가 클래스 같은 것을 개최하기도 한다. 신시내티의 스프링 그로브 묘지는 조류 관찰회, 황혼 투어, 패밀리 펀 나잇, 연례 애완견의 날, 세그웨이 라이더들의 날 등을 개최하고 있다. 코네티컷 주 브릿지포트의 주민들은 마운트 그로브 묘지의 연못 주변의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봄이면 층층나무가 꽃 피는 것을 감상하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낙엽을 찬미한다.
미국의 묘지들에 관해 책을 쓴 오레곤 대학의 건축역사 교수 키이스 에제너는 묘지들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묘지들은 아름다운 산책로들로 가득했죠. 사람들은 손님을 데리고 와서 피크닉을 했어요. 묘지는 도시의 주요 장식물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을 만드는 것은 과거 역사와 대칭을 이루는 일이다. 1700년대 말 스페인의 선교사들이 이곳에 오면서 포도나무를 가져와 와인양조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포도나무는 또한 종교적인 호소력도 갖고 있다. 교회 미사에서 와인이 중요한 부분이고, 예수님이 베푼 첫 번째 기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버 주교는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에 있는 예수회 신학교에서 수사수련기간이던 학생 때 학교 포도원에서 작은 칼로 포도송이를 따곤 했다. 이 포도나무들은 1880년대에 심어진 것들이다. 당시 이 학교에 재학중이던 제리 브라운 현 가주 주지사도 함께 포도 따기를 했다고 한다. 포도를 따는 첫 한시간 동안 그들은 포도밭 책임자가 호루라기를 불 때까지 침묵 기도를 하곤 했다. 이 노동에서 한가지 좋았던 점은 매일 저녁 식사에서 와인이 서브됐던 일이었다고 바버 주교는 회상했다. 그들이 그날 일했던 포도밭에서 전년도에 딴 포도로 담근 와인을 맛보며 식사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2006년 실리그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계속 적자상태인 묘지 운영 타개책의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묘지가 더 이상 현대사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연결고리는 없는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사회의 모델이 변했으면 가톨릭 교회의 모델도 업데이트 돼야 함을 깨달았다. 경비를 줄이고 화장장이 있는 장례식장을 사들인 그는 전통 매장과 함께 화장에 대한 마케팅도 시작했다. 포도원은 그 계획의 작은 부분이었다.
잔디를 심으려면 에이커당 5만달러가 들었다. 더 싸게 먹히는 다른 플랜트가 없을까 생각하던 실리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떠올렸다”고 한다. “와인 비즈니스에 뛰어들려던게 아니라 멋진 나무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포도나무 심기는 에이커당 1만7,000달러, 3분의 1 수준이었다.
2013년 교회 관리들은 록 월 와인회사의 쇼나 로젠블럼을 찾아가 묘지에서 딴 포도 열매로 미사주를 만들 수 있을지 타진했다. 미사주는 맛이 특별히 좋아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녀는 와인 컨설턴트 짐 라이언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짐 라이언은 파이어스톤 비녀드와 콘캐넌 비녀드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록 월 와인회사의 제너럴 매니저다.
첫해에 그들은 묘지에서 나온 포도를 모두 압착해 로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포도열매 얼마를 평가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헤이워드 묘지에서 나온 샤도네와 피노 누아 열매는 ‘아주 뛰어난’ 품질을 갖고 있었고, 인근 홀리 크로스 묘지에서 나온 카버네 소비뇽과 진판델의 열매는 ‘환상적’이었다고 라이언은 말했다. 그들은 실리그를 찾아가 자기들의 아이디어를 전했다. “제대로 된 와인을 한번 만들어봅시다”
올해 ‘주교의 포도원’에서 나온 카버네 소비뇽이 몬터리 국제 와인대회에서 은메달을 탔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와인대회에서도 카버네와 진판델이 은메달을 수상했다. 그렇게 묘지 와인이 창업 비즈니스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과는 달리 이것은 비영리이며 생산물의 거의 전부인 7,200병을 45개 교회에 미사주로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창업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비즈니스는 아직 수익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는 연간 15만달러를 와인 비즈니스에 투자하고 있으며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구는 주교포도원의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 블로그(Grapes & Graveyards)를 운영하고 있다. 친구와 가족 디스카운트가 있고, 와인 클럽에 가입하면 세 종류의 와인 패키지를 분기별로 받게 된다. 주교의 다발(2병), 추기경의 컬렉션(4병), 교황의 꾸러미(6병)가 그것이다.
교구에서는 와인 테이스팅이 열리고, 일년에 한번씩은 묘지에서도 열린다. 바버 주교는 “교회 미사용으로 가장 좋은 와인을 고르기 위해” 자기 집에서 시음을 하기도 한다.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고, 우리 주님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묘지에서 포도밭은 명당자리가 됐다. 야구 게임에서의 가격책정과 같아서 외야석은 좀 싸지만 홈플레이트 가까울수록 더 비싸지는 것과 비슷하다. 묘지 포도원에서는 ‘분위기’에 따라 포도나무 가까운 곳의 장지는 5,000~6,000달러로, 길 건너편보다 1,000달러 정도 더 비싸다. 이곳 기프트 샵에서는 묵주와 성모마리아상도 팔지만 와인도 팔고 있다고 바버 주교는 전했다.
<뉴욕타임스> <사진 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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