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재개관 효과
▶ 황량하던 사우스 마켓 재개발로 빌딩 숲으로

마이클 장이 1976년 찍은 사진 ‘사우스 오브 마켓’. 왼쪽에 세인트 패트릭스 처치, 오른쪽에 퍼시픽벨 타워가 보인다.

스뇌타 건축회사가 지은 새로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지난 달 재개관했다.

SFMOMA의 내부. 리처드 세라의 ‘시퀀스’(2006)가 전시된 이 공간은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사진작가 마이클 장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있었다. 4가와 하워드 스트릿 근처를 지나는데 “12시간에 85센트”라는 사인이 붙은 삭막한 파킹랏에 단 한 대의 셰비가 서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그가 버스 창을 통해 찍은 이 흑백 이미지는 1976년 이 도시의 사우스 오브 마켓(South of Market) 디스트릭의 전체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멀리 배경으로 4년전 완공된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의 3각형 형태가 보이고, 맨 왼쪽에 세인트 패트릭스 처치의 고딕 타워와 함께 오른쪽으로 아르데코 형태의 퍼시픽 벨 타워도 보인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산업과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폐쇄일로를 걷던 사우브 오브 마켓의 풍경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 곳처럼 보였어요. 85센트 내고 주차하기조차 싫은 곳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진을 찍을 수도 없습니다. 온통 빌딩 숲에 가려있으니 말이죠”
‘사우스 오브 마켓’이란 제목의 그 사진작품은 지금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FMOMA)에 걸려있다. 1995년 3가와 하워드 스트릿에 세워진 이 뮤지엄은 3년간 3억500만달러를 들인 개조와 확장공사를 마치고 지난 5월 중순 재개관했다. 그 주변은 W 호텔과 세인트 레지스 호텔, 가고시안 갤러리의 분점과 함께 일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고급 상가다.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우스 오브 마켓도 많이 변한 것이다.
“여기엔 노동계층 커뮤니티가 살고 있었죠. 이곳 다운타운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변했습니다”라고 SFMOMA의 부디렉터 루스 버슨은 말한다.
사우스 마켓에는 최근 젊은 프로페셔널 인구가 많이 모여들고 있다. 걸어 다닐 수 있고 로프트 주거지가 많기 때문이다. 마이클 장의 사진에 있던 구 팩벨 타워 자리는 지금 옐프(Yelp)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도심이 부흥하면서 다수의 뮤지엄이 포함된 문화지구의 건설도 이루어졌다. 3가와 4가가 만나는 미션 스트릿의 북쪽에는 예르바 부에나 아트 센터, 콘템포러리 유대 뮤지엄, 아프리칸 디아스포라 뮤지엄, 그리고 SFMOMA가 포진해있다. 2019년에는 여기에 멕시컨 뮤지엄이 들어설 예정이다.
노르웨이 건축회사 스뇌타(Snohetta)가 설계한 새 SFMOMA는 17만 스케어피트의 전시공간을 가졌고, 사진 컬렉션만을 위한 전용 갤러리를 만들었으며(이 뮤지엄은 사진 분야 컬렉션의 선구자로 꼽힌다), 미셸린 3스타의 한인 셰프 코리 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또 리처드 세라의 대형 설치작품이 있는 1층 갤러리는 방문객들이 25달러의 입장권을 사지 않고서도 들어와 쉽게 뮤지엄 컬렉션을 일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멋진 건물 뒤로는 도시 재개발의 바람직하지 않은 단면들이 숨어있다. 번쩍이는 새 문화기관이 들어서면 그 부근에 살던 예술가들과 저소득층 주민들은 쫓겨나게 마련이다. 그 극단적인 케이스가 스페인의 구겐하임 빌바오 뮤지엄이다.
“빌바오는 경제효과 면에서는 정말 성공적이었다”고 말한 롱비치 스테이트의 미술사 교수 니잔 샤케드는 “그러나 도시개발을 위해 한 지역을 고급화하는 프로젝트는 서민들을 쫒아내고 지역을 계층화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빌바오와 SFMOMA는 쉽게 비교해서는 안된다. 빌바오는 로컬 커뮤니티를 통합하여 신축한 국제 뮤지엄이지만, SFMOMA는 원래 이 도시에 있던 뮤지엄이기 때문이다. 1935년 창립된 SFMOMA는 지역 전방위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이 도시에서 자생된 기관이다. 원래는 시빅 센터 자리에서 60년간 운영되다가 1995년 사우스 마켓으로 옮겨왔다.
60년대에 마켓 스트릿은 샌프란시스코의 첫 게이바 ‘툴 박스’가 생겨난 곳이다. 1962년 4가와 해링턴에 문을 연 이 바의 자리에는 현재 홀푸즈 마켓이 들어서있다.
70년대에는 사진작가 자넷 딜레이니같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이 지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도심의 변해가는 풍경을 기록한 그녀의 작품들도 이번 SFMOMA 개관전에 전시돼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SFMOMA가 재개관과 함께 호화로운 전시를 열자 각계에서 비난의 화살이 꽂히고 있다. 갭(Gap)의 창립자인 도널드와 도리스 피셔 부부가 SFMOMA에 100년 장기 대여해준 260점의 일류급 현대미술품 ‘피셔 컬렉션’ 전시를 두고 비판하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미술사, 새로운 SFMOMA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가디언의 제이슨 파라고는 썼다. 아트넷의 벤 데이비스는 “유명한 이름들과 고가의 미술품들의 행렬이 때로 인상적이고 때때로 어리둥절한, 변이된 도시를 위한 변이된 뮤지엄”이라는 독설과 함께 이 뮤지엄을 “로컬 아트 신의 대단히 비싼 무덤이며, 이런 종류의 대형기관을 만들 수 있는 부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로컬 예술활동을 몰아낸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LA 타임스의 미술비평가 크리스토퍼 나잇은 이 뮤지엄의 오프닝을 ‘블루칩 파격’이라고 표현하고 “앞으로 더 나아간 SFMOMA는 시계를 넓히는 도전을 하고 있다”고 썼다.
물론 SFMOMA 만이 노동계층의 지역을 허문 잿더미 위에 세워진 문화기관은 아니다. 뉴욕에서는 샌후안 힐의 흑인 지역이 사라지고 링컨 센터가 설립됐으며, LA에서도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노동계층의 거주지였던 벙커힐 위에 MOCA 현대미술관과 브로드 뮤지엄이 지어졌다.
SFMOMA의 버슨 부디렉터는 “지역 엘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커뮤니티와 연관되는 뮤지엄으로 남기 위해 오랫동안 심사숙고 했다”고 말하고 “우리가 봉사하는 초등학생 숫자를 1만8,000명에서 5만5,000명으로 세배나 늘인 것도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18세 이하 방문객의 무료입장 혜택도 우리에게는 크나큰 진보”라고 말한 그녀는 “미술품으로 가득 찬 4만4,000스케어피트의 공간을 사람들이 무료로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뮤지엄이 열고 있는 첫 사진전은 지역사회의 뿌리를 보여주는 ‘캘리포니아와 서부: 사진과 예술을 위한 캠페인’으로, 마이클 장과 딜레이니를 포함한 작가들이 찍은 이 도시, 이 동네의 있는 자와 없는 자들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변하지 않는 도시는 없다. 어떤 지역도 세대가 바뀌면서 똑같이 남아있는 곳은 없다. 그러나 좋은 뮤지엄이라면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조용히 일깨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LA 타임스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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