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엔 돈 못 받는 의회서 경험 쌓고… 밤과 주말엔 식당에서 생활비 벌고
▶ 서민 자녀에겐 주75시간 일하는 중노동 여름

낮엔 의사당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도미니크 피콕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엔 호텔 식당에서 새벽 1시까지 일하고 있다.
뉴멕시코 대학의 졸업반인 도미니크 피콕은 워싱턴의 ‘미국 인디언 전국의회’ 여름 무급 인턴으로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자 맨 처음 자신이 사는 앨버커키에서 워싱턴까지의 항공료를 찾아보았다. 너무 비싸 단념한 그는 버스를 타고 44시간이나 걸려 워싱턴에 도착했다.
요즘 그는 인디언 공예품 보호정책 관련 수많은 법안들을 훑어보고 새로운 법안의 입법화를 위한 업무로 하루 종일을 보낸다. 그렇게 긴 하루를 끝낸 그는 다시 몇 블럭을 걸어 한 호텔 식당으로 간다. 그가 새벽 1시까지 테이블 치우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곳이다.
이렇게 주 60~75시간을 근무하는 그에게 허용되는 자유시간은 주 1일, 여름동안 머무는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기숙사에서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워싱턴 도시 둘러보기에만도 턱 없이 부족한 빡빡한 생활이다.
“내가 원한 일정이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잘 마칠 겁니다”라고 아코마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에 속하는 피콕은 말한다.
피콕 같은 수천명의 인턴들이 수도 워싱턴에 모여들고 있다. 인맥과 경험을 쌓으려는 기대로 전화 받기, 우편물 분류 등 단순노동의 잡무를 기꺼이 감수한다. 워싱턴 시 전역에 퍼져 있는 의원들 사무실, 연방기관, 비영리 단체 사법기관 등에 근무하는 이들은 때론 법안작성 보조 등 보다 일다운 일을 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민간 기업과는 달리 정부와 비영리 기관들은 인턴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워싱턴 지역에선 200개 이상의 연방프로그램이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데 일부는 유급이고 일부는 무급이다. 매년 수천명의 인턴을 채용하는 의원들 사무실의 경우 유급인턴은 극히 드물다. 현재 백악관에도 거의 100명의 인턴이 있지만 단 1명에게도 보수를 주지 않는다.

연방하원 사무실 무급 인턴 코트니 슈나이더는 주말마다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로 일해도 부모의 렌트비 보조를 받아야 산다.
그래도 이 지역 비영리 기관에는 무급 인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연방항소법원 판결로 일부 민간회사에서도 학생들이 임금 대신 대학 학점을 받을 수 있다면 무급 인턴을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급 인턴으로 인해 고용주가 지불해야할 경비는 없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무급 인턴제도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급 노동은 한편으로는 워싱턴의 임금을 억제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방정부와 의회를 부유한 학생들만이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그 결과로 특권층의 자녀들은 가난한 학생들에 비해 상향이동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다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근근이 먹고 사는 부모의 자녀들이라면 어떻게 무급 인턴을 할 수 있겠는가?” 진보성향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의 로스 아이제브레이 부소장은 “이런 제도가 정부의 일자리 기회를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무급 인턴제로 인해 돈을 안 받고도 기꺼이 일하겠다는 대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신입 직장인들의 봉급 인하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등교육 연대기’의 2012년 서베이에 의하면 각 직장의 인사담당자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 채용여부를 결정할 때 인턴 경험을 가장 주요요건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서베이 결과를 인용한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애나 베네이터는 무급 인턴이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실력 덜한 자녀들을 소득 사다리의 상부에 머물게 해주는 이른바 ‘유리바닥(glass floor)’이 되고 있다”면서 그 때문에 저·중산층의 계급 상향이동이 지연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인턴십의 수도로 꼽히는 워싱턴과 뉴욕, LA의 생계비는 저소득층과 중산층 학생들에겐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베네이터는 말했다.
무급 인턴십이 취업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전국 대학 및 고용주협회의 서베이에 의하면 무급 인턴 경험자가 유급 인턴 경험자보다 초봉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급 인턴의 60%가 인턴십이 끝난 후 풀타임 잡을 제의 받은 데 비해 무급 인턴의 경우엔 40%에 머물렀다.
워싱턴의 무료 인턴들에겐 부모의 작은 보조도 큰 도움이 된다. 텍사스 주의 랜디 누제바우어 연방하원의원(공화) 사무실의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코트니 슈나이더는 이곳에 오기 전 크렘슨대학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수영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아 두었고 지금도 주말엔 지역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로 일한다. 그런데도 엑슨 모빌과 사립학교 행정관으로 일하는 부모가 아파트 렌트를 보조해 주고 있다. “이런 도움이 없이는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내가 아는 친구들도 거의 다 가족이나 장학금 등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슈나이더는 말했다.
박물관이나 술집, 포토맥 강에서의 보트 타기에 이르기까지 워싱턴 상가나 관광지의 일부에선 인턴 배지를 제시하면 할인을 해주지만 빠듯한 인턴 예산으로 살인적으로 비싼 워싱턴의 주말과 밤 생활을 즐길 여유가 이들에겐 없다.
낮의 무급 인턴과 밤의 식당 알바의 틈에서 시간을 쪼개낼 수 있을 때 피콕이 즐겨가는 곳은 링컨 기념관이다. 1863년 링컨대통령이 뉴멕시코의 일부 푸에블로 부족의 주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해준 것 등 자신의 부족 역사를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힘든 여름이지만 피콕은 주 75시간 근무의 빽빽한 일정을 불만 없이 감수한다.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어서다. 작년 가을에도 워싱턴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는 그는 “정말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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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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