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질은 ‘세금 샅바싸움’
▶ GPS와 지도 데이터는 별개
글로벌 인터넷 업체 구글이 한국의 지도를 해외로 반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을 두고 각계의 찬반양론이 뜨겁다. 구글은 왜 지도를 달라고 하는 것이며, 못 준다는 쪽은 왜 지도 반출을 막으려는 것일까. 지도 반출을 막거나 또는 허용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는 것일까.
■지도를 반출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 스마트폰이 “당신은 지금 종로3가에 있으며 30미터 전방에서 왼쪽 모퉁이를 돌면 50% 세일을 하는 유명한 피자가게가 있다”고 알려줄 수 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스마트폰이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내 위치를 GPS로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GPS만 가지고는 이런 서비스가 어렵다. GPS는 내가 ‘위도 몇도, 경도 몇도’의 위치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주지만 그 곳이 종로3가인지 을지로5가인지, 그리고 앞으로 30미터를 걸어가면 편의점이 나오는지 공사 중인 공터가 나오는 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려면 위도 몇도 경도 몇도 지점에 뭐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에서 내가 있는 위치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는 대한민국 지도 데이터를 갖고 있어야 한다. 구글은 이미 세계 각국의 지도를 ‘글로벌 서버’에 넣고 이런 서비스(구글맵)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버는 미국ㆍ칠레ㆍ대만ㆍ싱가포르ㆍ아일랜드ㆍ네덜란드ㆍ핀란드ㆍ벨기에 8개국에 흩어져 있는데 전 세계의 누구라도 이 중 가까운 서버에 접속해서 지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구글은 한국의 지도데이터도 이 8개국의 서버에 저장해놓고 한국에서도 고객이 위치와 지도를 연동한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싶으니 대한민국 지도 데이터를 달라(반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지도 반출을 왜 못하게 막는가
대한민국 지도 데이터는 정부 산하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이 지도를 바탕으로 ‘T맵’이라는 길찾기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도를 한국 내에서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외국으로는 갖고 갈 수 없게 법으로 묶어놨다. 정 필요하면 정부에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구글은 “SK텔레콤 등이 이미 공짜로 가져다 사용하고 서비스하고 있는 바로 그 지도를 우리도 달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구글이 한국의 지도를 갖고 본격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이나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지도 서비스를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 있는 국내 IT 업체들은 구글이라는 거대한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경쟁은 서로에게 자극과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거대한 기업과의 경쟁은 후발주자들의 성장의 싹을 잘라버리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국내 업체를 보호해주지는 못해도 기왕 법으로 금지된 지도 반출을 예외적으로 구글에게 허용해주지만 않으면 국내 업체들이 구글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외국기업을 도와주려고 하느냐는 게 지도 반출을 막자는 쪽의 속내다. 그런 주장 안에는 구글이 한국에 세금도 잘 안내고, 한국 정부의 지시나 규제도 그동안 얄밉게 피해 다녔다는 감정적인 요인도 담겨 있다.
■지도가 반출되면 우려되는 보안 문제는 없나
지도 정보에는 국가 주요 시설이나 군부대의 위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공개한 지도에는 그런 시설들이 지워져 있다. SK텔레콤 등이 사용하고 있는 지도에도 그런 시설들은 가려져있고 구글이 반출하겠다는 지도도 보안 시설들은 삭제된 지도다.
그러나 안심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만들어 배포하는 지도에는 그런 주요 시설들이 감춰져 있지만 이미 전 세계를 내려다보는 위성사진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위성사진과 대조해서 감춰진 시설들을 복구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이 사용하는 세계 지도에는 청와대 앞마당에 나무가 몇 그루나, 어떤 방향으로 심어져 있는지 뚜렷하게 나오고 있다. 물론 구글의 요구대로 지도 데이터가 외국으로 빠져나간다고 그런 내재된 보안 위험들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테러리스트들이 마음만 먹으면 구글 지도가 없더라도 이미 공개된 SK텔레콤의 T맵 지도와 애플 등이 공개한 위성지도를 합쳐서 얼마든지 주요 보안시설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도 반출을 반대하는 쪽도 ‘지도가 외부로 나가면 정확히 어떤 안보 문제나 보안 문제가 생기느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상상 가능한 다양한 문제는 있지만 그게 지도 반출을 막는다고 사라지는 문제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글이 지도 반출을 포기하고 SK텔레콤의 T맵처럼 한국에 서버를 두고 그 안에 지도를 넣어서 서비스를 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다만, 구글의 서비스는 혹시라도 서버나 회선의 문제가 생겨서 접속이 어려울 경우 다른 서버를 활용하도록 지도 데이터를 여러 나라 서버에 분산시켜놨는데 한국 지도는 오직 한국에 있는 서버에만 담겨있다면 영국에서 한국 서버의 접속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만 서버에 담긴 한국 지도를 이용하도록 하는 식의 대응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이 지도 반출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점은 굳이 지도를 빼내가겠다는 구글을 멋쩍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지도 반출을 막자는 쪽의 논리도 군색하게 만든다. 구글이 지도 서비스를 하게 되면 국내 업체들이 피해를 입으며 안보나 보안 문제도 생기므로 지도 반출을 막아야 된다는 주장이 힘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 피해나 문제들은 지도 반출을 막더라도 어차피 (구글이 국내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한다면) 생길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지도는 인질… 알고 보면 세금 싸움?
구글이 한국에서 버는 돈에 제대로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는 지도 반출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지도 반출을 허용하지 말자는 주장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구글 같은 인터넷 업체들은 전 세계 사용자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데 수익에 대한 세금은 무조건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가 있는 나라에만 낸다.
구글은 한국에서 구글코리아라는 자회사를 두고 광고 영업을 하지만 광고로 버는 돈의 대부분은 아일랜드나 싱가포르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직원들은 영업대행 수수료를 받고 그에 따른 세금 정도만 내는 구조다. 지도 반출을 허용하면 지도 서비스로 버는 돈도 그런 식으로 세금을 회피할 테니 지도 서비스의 서버는 한국에 두게 해서 세금을 제대로 물리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글이 한국에 서버를 두더라도 한국에 세금을 거의 안낼 수도 있다. 지도 서비스로 한국에서 1조원을 벌었더라도 지도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나 지적재산권을 구글 본사에서 사다가 서비스를 한 거니까 그 대가로 본사에 9,999억원을 내기로 했고 그러니 한국에서 순수하게 번 돈은 1억원 밖에 안 된다고 신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회사를 세워서 브랜드와 지적재산권을 다 거기에 몰아주고 전 세계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아일랜드 자회사에 로열티 명목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그래도 서버가 한국에 있으면 그런 계산법이 타당한지 부당한지를 따져볼 수라도 있다”고 말한다. “세금문제로 한정하면 서버가 국내에 있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진우 경제방송 진행자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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