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그 노인은 지금 메릴랜드 지역 한 너싱홈에서 지낸다. 얼마 전 가족들 앞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져 대퇴부 골절상을 당했다. 할 일이 없어진 그는 침대에 누워 때때로 회상에 잠기곤 한다.
청년은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고 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었다. 한참 반항기였던 청소년 때 부모를 잃었고 철부지 동생들만 세 명을 거느린 소년 가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많은 달란트를 주신 것 같다. 두뇌는 명석했고 재치 넘치는 화술과 유머감각, 강인한 투지력을 겸비한 촉망 받는 청년이었다. 그는 대단한 노력가였고 어떤 일이든 맡으면 훌륭하게 끝맺음 하는 추진력을 지녀 어디에서나 인정 받는 엘리트로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멋진 일꾼에게는 언제나 일감이 맡겨지고 그는 일을 즐겼고 일 중독자였다. 제일 일찍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일했다. 부모 없는 동생들의 부모 자리를 대신해 주기 위해 내 가정 내 가족을 위해 그는 일을 보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건강한 그의 몸은 그 고된 일과에도 묵묵히 그를 지켜 주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여행도 모르고 잠도 마음 놓고 자본 적이 없었다. 일과 후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고달픈 세상살이 논하며 주거니 받거니 술잔 오가는 재미가 그의 유일한 낙이었고 취미였다.
그렇게 세월은 유수같이 몇 십 년이 흘러갔고, 평생 운동을 모르던 그의 몸은 오래된 수도관 같이 삭아져 갔다. 진액이 말라버린 골격은 굽은 등과 휘어진 다리를, 지친 몸은 낡은 건물처럼 허물어져 내린다. 예리하던 눈빛은 풀어져 있고 해 맑았던 정신은 사고력까지 잃어 가고 있다.
그는 한 평생 이루어 놓은 안락한 자신의 집을 두고 재활원에서 재기할 날만을 꿈꾸며 갑갑함을 견디고 있다. 은퇴하면 마음껏 다녀보겠다던 무수한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된지 오래다. 그는 들리지 않는 귀와 흐려진 눈으로 성경구절과 벗하며 감사하다고 기도 드린다.
비록 소박한 인생이었지만 가족과 혈육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왔다는 성취감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다. 그가 마지막 가는 길은 결국 혼자라는 걸...
어느 누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길이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지만, 또한 받아들여야만 되는, 가야만 하는 길이기에 날마다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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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포토맥문학회 저먼타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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