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셔널 트레저’에서 다이앤 크루거의 더블 역을 하고 있는 리사 호일.
스턴트맨은 영화를 찍을 때 위험한 장면에서 대신 몸을 던지는 대역 전문가를 말한다. 그러나 위험한 장면에 노출되는 건 남자만이 아니다. 그 때는 스턴트우먼이 고용된다. 이들은 남자 못지않게 과격하고 위험한 장면에서 온몸을 날린다. 때로 높은 데서 떨어지기도 하고, 거의 벗은 몸에 하이힐을 신은 채로 굴러야할 때도 있다.
남성들의 세계인 할리웃에서 30년간 스턴트우먼으로 뛰고 날고 구르다가 회사를 차려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조니 애버리에 따르면 “바지 입고 자켓 걸치고 패드까지 댄 남자들이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신은 여자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업계에서 여자들이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배우의 스턴트 더블이 필요한 많은 경우 가발 쓰고 치마를 입은 남자가 현장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스턴트우먼은 어떤 사람들일까? 뉴욕타임스가 8명에게서 그들의 커리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로리 시맨(Lori Seaman, 54)
카레이서였던 그는 1985년 한 스턴트 코디네이터의 제의로 ‘스펜서: 포 하이어’의 몇 개 에피소드에 출연하면서 업계에 들어왔다. 전문 분야는 운전으로, 자동차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차를 360도 돌리는 일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급브레이크 회전 같은 건 식은 죽 먹기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차가 뒤집어지는 장면을 찍어도 이틀 정도 몸이 아프고 나면 괜찮다는 그녀는 50년 스턴트 경력의 남편과 함께 스턴트 운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스턴트 지망생들에게 전하는 그녀의 조언.

영화 ‘존 윅’에서 조연 애드리안 팔리키와 그녀의 더블을 맡은 쇼나 티보도(왼쪽).
◆쇼나 티보도(Shawnna Thibodeau, 40)
어려서부터 지붕에서 뛰어내리기나 손 놓고 자전거 타기 등 스릴 있는 일을 좋아했던 그는 이런 모험으로 돈도 벌 수 있겠다 싶어서 2000년 경 뉴욕에서 스턴트우먼이 됐다. 5피트10인치의 큰 키에 좋은 스턴트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찰리즈 테론, 우마 서먼, 니콜 키드만의 더블로 활약해온 그녀는 여배우들로부터 감사와 칭찬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다고 말한다. 어린 남매를 키우고 있어 스턴트 일을 병행하기가 점점 어렵다는 그는 갑자기 불려나가거나 어떤 때는 밤을 새고 촬영할 때도 있어서 아이들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제이디 데이빗(Jadie David, 66)
승마를 즐기던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고 했다. 여배우 드니스 니콜라스가 말 타고 수영하는 장면의 더블이 처음이었는데 당시 하고 있던 간호사 공부보다 훨씬 재미난 일 같아서 뛰어들었다. 점프와 고층빌딩 낙하 스턴트가 전문인 그는 팸 그리어의 1970년대 모든 영화에 더블로 나왔다. 2번의 큰 부상이 있었는데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점프하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쳤고, 게임쇼에서 고공 낙하하다가 또 허리를 다쳐서 1년 동안 깁스를 해야 했다. 그때 이후 스턴팅을 떠나 지금은 세트의 안전장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그녀는 “사람에게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액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의 두려움을 마음이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니(Joni Avery, 58)
형무소 셰리프로 무술에 능한 그녀는 스턴트맨이었던 전 남편의 소개로 1986년 스턴트를 시작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밧줄을 잡아타고 땅에 내려오는 일이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 날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그녀는 TV쇼와 영화에서 파멜라 앤더슨, 패트리샤 아케트의 더블로 활약했다. 전천후 스턴트 기술을 자랑하는 그는 ‘E.R.’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 환자 역도 했고, 외줄타기 묘기를 배운 후 줄을 타다가 떨어져 어깨가 부러진 일도 있다.
가장 위험했던 스턴트는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주연한 ‘부러진 화살’에서 달리는 열차에서 저쪽 열차로 건너뛰는 일이었는데 기차 벽에 부딪치면서 매달려 필사적으로 버둥대느라 죽을 뻔 했다. 떨어지는 순간 뒤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즉사할 상황이었다. 그 일로 3만달러를 받았는데 “과연 이게 목숨을 걸만한 일인가”하는 회의가 왔고 결국 나와서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됐다. 그녀의 조언은 “너의 안전은 온전히 너의 책임이므로 조금이라도 두렵게 느껴진다면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낸시 서스톤(오른쪽)은 ‘C.S.I.: 마이애미’에서 에밀리 프록터의 더블이었다.
◆낸시 서스톤(Nancy Thurston, 49)
체조선수였고 프로페셔널 하이 다이버였기 때문에 공중낙하 스턴트가 전문이다. 8세 소녀부터 98세 노인 역까지 수많은 여배우들의 더블이었던 그는 특히 영화 ‘타이태닉’에서 배에서 뛰어 내린 여성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한 밤중 어두울 때 촬영했는데 40~50 피트 높이의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장면은 무섭다기보다는 섬뜩했어요. 오래전에 실제로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재연하는 것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한 그는 가장 위험한 스턴트는 차에 치이는 장면이라고 전했다. “차에 받히면서 공중에서 몸을 뒤집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공중 감각이 없으면 부상의 변수가 많답니다”
◆리사 호일(Lisa Hoyle, 45)
어릴 때 체조선수였고 대학 때는 곡예단에 있었던 그는 앤젤리나 졸리(‘사이보그 2’), 카이라 나이틀리(‘카리브해의 해적들’), 다이앤 크루거(‘내셔널 트레저’)를 비롯해 무려 100여명의 여배우 더블로 나왔다. 그녀의 전공은 고공 낙하. 한번은 ‘찰리스 앤젤’ 영화에서 그녀의 최고 기록인 93피트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는데 결국 편집 당하고 말았다. “스턴트우먼이 지상 최고의 잡”이라는 그는 그러나 스턴트 피플은 에이전트가 따로 없으므로 스스로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엘 알렉산더(Elle Alexander, 40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와일드 웨스트 스턴트 쇼에서 훈련을 받고 화상, 낙하, 무기, 말, 자동차 등 다양한 스턴트 기술을 가진 그는 시고니 위버와 크리스틴 존스턴, 미시 파일의 더블로 많은 영화와 TV 프로에 출연했다. 한번은 미시 파일의 스턴트로 퀸 라티파와 격렬한 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화장실로 내던져지고 변기에 머리를 처박히다가 정강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의사가 몇 바늘 꿰매주자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 신을 마쳤다는 그는 스턴트는 나이 들수록 몸이 더 아프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냐 조 맥댄서(Sonia Jo McDancer, 65)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복싱을 배웠고 사춘기 시절에 남자애들과 돈내기 카레이스를 즐겼던 터프걸이 스턴트우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프란 드레셔, 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 킴 베이신저의 더블이었던 그는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400피트 상공에 위태하게 매달려있는 장면을 찍을 때 마침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불면서 몸이 앞뒤로 흔들리던 순간을 꼽았다. 그것 말고도 두 번 부상을 입었지만 어디 부러지지는 않았다는 그는 유도 등 무술을 잘해서 낙법을 알고 있는 것과 사전에 제작진과 안전대책에 관해 철저히 점검한 후 작업에 임하기만 한다면 이 일보다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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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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