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년전 문 연 해처즈 서점직원들 서로 다른 글씨체로 코너 곳곳 책 소개글 붙여놔 호기심 자극해‘책의 재발견’
영국 런던의 최고 번화가로 꼽히는 피커딜리 거리에는 지난 1797년에 문을 연 서점 ‘해처즈’가 있다. 국내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너가 이곳에는 없다. 바로 획일의 상징인 베스트셀러 섹션이다. 대신 서점에서 엄선한 책을 손글씨로 쓴 설명과 함께 빼곡하게 꽂아둔 ‘해처즈의 서가’가 존재한다. 서점을 찾는 이라면 반드시 살펴보고 간다는, 아니 서점의 방문목적 그 자체인 곳이 바로 해처즈의 서가다. 해처즈의 시선이 담긴 ‘아날로그식 큐레이션’에 대한 런던 독서인들의 신뢰는 그만큼 높다.
영국 런던의 최고 번화가로 꼽히는 피커딜리 거리에는 지난 1797년에 문을 연 서점 ‘해처즈’가 있다. 국내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너가 이곳에는 없다. 바로 획일의 상징인 베스트셀러 섹션이다. 대신 서점에서 엄선한 책을 손글씨로 쓴 설명과 함께 빼곡하게 꽂아둔 ‘해처즈의 서가’가 존재한다. 서점을 찾는 이라면 반드시 살펴보고 간다는, 아니 서점의 방문목적 그 자체인 곳이 바로 해처즈의 서가다. 해처즈의 시선이 담긴 ‘아날로그식 큐레이션’에 대한 런던 독서인들의 신뢰는 그만큼 높다.
해처즈의 큐레이션을 굳이 아날로그식이라고 표현한 것은 서가에 꽂힌 책들의 경우 빅데이터나 추천 알고리즘 등 디지털 첨단기술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서점 스태프들은 해처즈를 믿고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직접 골라 서가를 정성스럽게 꾸며놓는다. 그러면 독자들은 마치 뜻이 잘 통하는 친구의 서재를 대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해처즈서점의 책꽂이에서 책을 고르게 된다. 심장이 뛰지 않는 디지털은 결코 줄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생동감 넘치는 감동을 해처즈서점이 런던 독서인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서점에 들어서면 좀 더 많은 책들이 독자들의 시선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해처즈의 전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장르 구분과 도서분류법에 따른 일목요연한 정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스탠딩 서재 사이로 원형 탁자를 놓아 마련한 소형 서가의 책 구분은 조금은 독특하다.
책 속의 구절을 적어 이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책들을 모아놓거나 ‘흥망성쇠(rise and falls)’ 섹션과 같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물이나 국가·기업 등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들을 모은 코너, 영국(Great Britain)과 잉글랜드(England), 런던(London) 출신의 작가들만 모아놓은 섹션도 눈에 띄었다. 모든 코너 곳곳에는 저마다 다른 글씨체로 직원들이 손수 쓴 책에 대한 소개 글이 붙어 있다. 마치 서점에 들어선 순간부터 독자의 손을 이끌며 책의 재발견을 도와주는 듯하다. 이 같은 특색 있는 큐레이션은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해처즈서점에 간다는 것은 ‘해처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각종 디지털 기기가 오프라인의 현실을 대체하는 시대에 이처럼 ‘아날로그식 큐레이션’이 힘을 발휘하는 현상은 신뢰가 한 기업의 사업적 토대가 되는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스티븐 로젠바움은 자신의 저서 ‘큐레이션’에서 “우리는 큐레이션으로 인해 정보의 홍수가 빚어내는 잡음이 사라진 명료함을 가질 수 있다”며 “스스로 선택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정보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 안정된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해처즈의 큐레이션은 오프라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처즈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정기적으로 해처즈가 엄선한 책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 등 장르를 선택할 수 있고 어린이나 여행 분야, 예술가를 위한 연간 구독 서비스 등 특화 서비스도 있다. 소프트커버를 택할 경우 회당 150파운드(약 200달러) 안팎, 하드커버는 300파운드(약 390달러) 안팎이다.
해처즈 못지않게 독특한 매력으로 영국인들의 독서 문화를 고취시키는 곳이 여행 전문 서점 ‘돈트북스’다. 1990년에 설립된 돈트북스는 첼시·홀랜드파크·햄프스테드 등 런던 내 6개 지점을 운영 중인데 특히 본점인 메릴본점은 목조 건물에 에드워디언 양식의 2층 서가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영국의 대형서점들이 한 권을 사면 한 권을 얹어주는 이른바 ‘1+1(1 get 1 free)’의 공격적 마케팅을 앞세울 때도 돈트북스는 묵묵히 정가판매를 고집했다.
이 서점은 각 지역별로 섹션을 나누고 각종 여행책과 해당 국가 작가가 쓴 수필·픽션은 물론 역사와 정치 관련 서적까지 두루 갖췄는데 그 다양성은 기대 이상이다. 코리아 섹션의 경우 한국과 북한의 주요 가이드북은 물론 펭귄북스에서 펴낸 홍길동전부터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까지 다양한 책들이 소개돼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중고 가이드북과 지도, 여행 서적 등을 빽빽하게 꽂아둔 2층 공간이다. 수십년 세월의 때가 묻은 가이드북 시리즈나 지도들을 누구나 펼쳐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돈트북스의 성공을 바탕으로 창업자인 제임스 돈트는 2011년 도산 위기에 빠졌던 영국 최대의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에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되며 또 한 번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경기 불황과 온라인 서점의 공격적인 영업에 밀렸던 워터스톤스를 탈바꿈시킨 키워드도 ‘아날로그식 큐레이션’이었다.
마이클 바스카가 쓴 ‘큐레이션’을 보면 돈트는 출판사 직원에게 일정 수수료를 주고 책의 선택을 맡기는 대신 전문인력을 별도로 고용해 책을 사들였고 직원 누구나 책을 선택하고 진열할 권한을 줬다. 이를 통해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매장 직원은 수동적으로 주문을 받는 위치에서 책임감을 가진 큐레이터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워터스톤스는 아마존 킨들 등장 이후 25%의 매출 급락 상황을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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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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