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만에 금 매입 재개
▶ 금투자 실패 경험에 외면했지만
▶ ‘셀 아메리카’ 현실화 전망 커지고
▶ WGC 디지털 금 발행예고도 한몫
▶ 세계 최대 금 현물ETF ‘GLD’ 유력
한국은행이 지난 13년 동안 단 1g도 금(金)을 매입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2010년대 초반 금 투자를 늘렸다가 막대한 손실을 냈던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한은은 이성태 전 총재 시절인 2010년까지만 해도 거의 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가격 변동성이 큰 금에 투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임인 김중수 전 총재가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 전 총재는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3년에 걸쳐 약 3조5,000억원을 투입해 금 90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문제는 2013년을 기점으로 금값이 폭락했다는 점이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시장 불안이 잠잠해지면서 안전자산이었던 금의 몸값이 뚝 떨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국정감사 등에서 “한은이 투자금의 3분의 1을 날렸다”는 질책이 이어지자 한은은 금 투자에서 아예 손을 뗐다. 당시 한은이 사들인 금은 영국 중앙은행 지하창고에 금괴 형태로 보관돼 있다.
영원히 금을 사지 않을 것 같았던 한은이 다시 금 관련 투자에 나선 것은 금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지정학적 위기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독립성 침해 등으로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주요국들이 미 국채를 팔겠다고 선언하면서 ‘셀 아메리카(Sell America)’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금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보고 이제라도 금을 사기로 한 것이다.
세계금협회(WGC)가 ‘디지털 금’ 발행에 나설 경우 금 수요 기반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금을 디지털화할 경우 각종 거래나 결제에 쉽게 쓸 수 있는 데다 담보 활용 가치도 높아지면서 금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금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러 중앙은행은 여전히 금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실물 금 투자가 갖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해외 상장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금 현물은 국채 등 다른 자산에 비해 유동성이나 환금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금은 외환보유액 중 최후의 수단이라는 인식 때문에 한 번 사면 쉽게 매도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반면 금 현물 ETF는 실물 금을 보유하지 않고 언제든지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해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 거래 내역도 즉각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현물과 ETF 모두 이자·배당 등 현금 흐름이 발생하지 않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점은 같지만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금 매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가 유력한 상품은 세계 최대 금 현물 ETF인 ‘SPDR 골드 트러스트(GLD)’로 운용자산 규모만 1,727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반면 ‘ACE KRX금현물’과 ‘TIGER KRX금현물’ 등 한국 상품은 합산 순자산이 6조2,00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한은이 직접 투자할 경우 한국 시세가 국제 시세보다 비싸지는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할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다.
한은이 13년 동안 금 매입을 중단한 사이 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 자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했다.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4톤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39위 수준이다.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2%로 조사 대상 100개국 중 98위까지 하락했다. 중국 등 일부 국가가 비공식으로 금을 매입하는 만큼 WGC가 집계하는 중앙은행 금 보유 통계가 과소 측정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은은 2013년 금 매입을 중단한 후 주식 위주로 외화자산 운용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꾸준히 수익을 높였다. 2012년 외화자산 중 주식 비중은 5.7%였으나 2024년에는 10%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는 전 세계 136개 중앙은행 평균 주식 비중(약 2%)보다 5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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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조지원·김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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