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만금 방조제로 갯벌 사라진 후, 호주~알래스카 1만6,000㎞ 여정
▶ 지친 철새들 몸무게 2배 돼 떠나

검은머리물떼새 무리가 2016년 4월 유부도의 갯벌에 앉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검은머리물떼새는 매년 겨울이면 4,000마리 가량 유부도를 찾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충남 서천에 있는 유부도를 아시나요. 유부도는 금강 하구에 있는 면적 0.79㎢, 해안선 길이 4㎞로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 정도인 아주 작은 섬입니다. 20년 전 이곳 유부도의 정신질환자 수용소인 수심원에서 수용자들에게 수갑을 채워 폭행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절망적인 섬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기도 한데요. 요즘에는 간조 때면 섬 크기의 20배 이상으로 넓어지는 갯벌이 유명한 철새 도래지로 바뀌고 있습니다.
■새만금 갯벌 사라져 금강하구로 간 철새들
유부도를 포함한 금강하구 지역은 도요새와 물떼새의 국내 최대 중간기착지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세계 최대의 방조제인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동진강과 만경강에는 유부도, 서천갯벌의 4배 가량인 300㎢의 갯벌이 있었습니다. 2003년까지는 매년 봄이면 30만마리, 가을에는 5만마리 이상의 철새가 새만금을 찾았지만 새만금의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된 2006년에는 5만마리, 최근에는 5,000마리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수많은 도요새, 물떼새들이 사라졌지만, 이 중 다행히 살아남은 일부 개체들은 금강하구와 곰소만으로 도래했습니다. 이후 도요·물떼새는 다음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생존을 위해 유부도를 포함한 금강하구갯벌로 지속적으로 도래했고, 의도치 않았지만 이제는 10만~20만 마리 이상이 찾아오는 우리나라의 최대 중간기착지가 됐습니다.
만약 수많은 도요ㆍ물떼새가 찾아오는 이곳 유부도와 서천갯벌에 대한 합리적인 보전과 관리가 없다면 가까운 미래에 도요·물떼새 역시 과거 새만금 갯벌이 사라졌을 때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철새가 잠시 쉬어 가는 곳… 봄에 찾는 새만 18만마리
유부도와 서천갯벌은 도요새와 물떼새가 수시로 오고 갈 정도로 가까이 있어 하나의 서식대로 인식됩니다. 지난해 국립생태원의 ‘기수생태계 내 국제적 멸종위기 이동성 물새 서식지 관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봄이면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북상하다 잠시 쉬어 가는 새가 22종, 17만8,279마리, 가을에 호주, 뉴질랜드로 다시 남하하는 새는 20종, 4만1,466마리라고 하네요. 관찰이 용이한 지점에서 쌍안경, 필드스코프를 사용해 매주 개체를 세서 합산한 거죠.
종 수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개체 수는 봄철이 약 4배 가량 많은데요. 이는 봄철 북쪽 번식기로 이동할 때는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가장 먹이 확보 가능성이 높은 금강하구에 집중 도래하지만, 가을철 월동을 위해 비번식기로 이동할 때는 여러 곳으로 분산 도래하는 양상 때문입니다.
이들 종 중 8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돼 있는데요. 대표적인 종이 ‘위급’에 속하는 넓적부리도요, ‘위기’에 속하는 알락꼬리마도요와 붉은어깨도요, ‘위기근접’에 속하는 검은머리물떼새, 큰뒷부리도요, 마도요, 노랑발도요, 좀도요가 있습니다. IUCN은 멸종위기 동물을 총 9단계로 분류하는데 ‘위급’은 그 중 세 번째로 심각한 단계로 야생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 수준을 의미합니다. 국내에서는 넓적부리도요가 환경부 멸종위기종 I급, 알락꼬리마도요와 검은머리물떼새가 멸종위기 II급으로 지정됐습니다.
특히 검은머리물떼새는 겨울철 최대 월동지로 유부도를 이용하는데 가을부터 도래하기 시작해 약 4,000마리 이상 모여 겨울을 나는 천연기념물이기도 합니다.
■도요.물떼새가 유부도를 찾는 까닭은
이렇게 많은 수의 도요.물떼새가 유부도와 금강하구 갯벌에 모이는 이유는 뭘까요. 과거 새만금이 그랬듯 풍성한 자연은 이들에게 북쪽의 번식지로 가기 위한 충분한 먹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철새들의 ‘핵심 중간 기착지’인 금강 하구는 ‘비핵심 중간 기착지’인 낙동강 하구보다 먹이원인 저서무척추동물의 밀도는 조금 낮지만 생체량과 에너지량은 약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도요.물떼새들에게 중요한 것은 먹이의 수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먹이의 질이라는 것입니다. 가늘고 작은 갯지렁이 하나를 먹는 것보다는 안이 실하고 크기가 큰 조개를 하나 먹는 것이 에너지를 비축하는 데 더 유리하니까요.
도요.물떼새는 물이 차는 만조 시기에는 체온조절을 위해 주로 한 다리로만 서서 휴식을 취합니다. 이때 잠도 청하고, 깃털을 다듬거나 바닷물 목욕을 하죠. 쉬는 장소는 갯벌이나 모래, 돌 위이지만 간혹 나뭇가지 위에 앉아 쉬기도 합니다.
■8,000㎞ 날아온 지친 철새들, 몸무게 두 배 늘어 떠나
유부도는 멀리서 날아온 철새들이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맛집’입니다. 호주나 뉴질랜드 등지에서 봄철에 날아온 도요새와 물떼새가 금강하구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7,000~8,000㎞의 장거리 비행을 한 상태인데요. 이 때문에 이들의 몸무게가 거의 반으로 줄어듭니다. 새들은 약 40일가량 유부도에 머무르면서 다시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7,000~8,000㎞의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충전합니다. 떠날 무렵이 되면 이들은 다시 가슴에 지방질을 축적해 몸무게가 섬에 도착했을 때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죠.
새들이 시베리아까지 날아가는 데 6~7일가량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한마리 당 1,250kcal, 즉 라면 두 개 반 분량의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봄에 이 지역을 찾는 새의 수를 생각하면 라면 30개들이 1만5,000박스 가량입니다. 국립생태원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북시베리아까지 이동할 에너지를 축적하려면 62.56㎢의 섭식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유부도와 서천갯벌의 면적이 약 71.3㎢라고 하니 현재 머무르는 새들에게는 적당한 크기죠. 하지만 원래 새만금을 찾았던 30만마리 이상의 개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면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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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준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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