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벌기위해 대서양 횡단, 종교자유는 이미 누려
▶ ‘추수감사절 유래’ 상당부분 허구

플리머스에서의 첫 추수감사절’ 광경. 제니 어거스타 브라운스콤의 1914년 작품이다.

추수감사절 이야기의 진실을 밝히자는 비영리기구 ‘플리머스 400’의 회원들. 그들은 1614년 인디언 원주민들이 영국인들에게 잡혀 유럽에 노예로 팔린 때부터 추수감사절 이야기는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아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대부분 학교에서 배워 사실로 믿고 있는 첫 추수감사절 이야기는 사실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짚어볼 수 있다. 세세한 부분들을 과감히 요약해버리거나 부드럽게 정리하느라 맥락에서 벗어나버린 교과서들, 내용을 희석해서 읽기 기분 좋게 다듬은 어린이 책들, 혹은 추수감사절 TV 특집으로 제작된 만화영화 등이 합세해서 그럴 듯한 스테레오타입 추수감사절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들: 미국역사 교과서에 실린 잘못된 내용들’이란 책을 펴낸 사회학자 제임스 로웬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특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부사항들이 불확실한 내용들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그저 사실로 외우도록 가르친, 확신에 찬 교재물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1620년 영국의 플리머스에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의 매서추세츠, 플리머스에서 내려 그곳에 정착했고, 1621년 성공적 첫 수확을 축하하기 위해 3일간 잔치를 했다. 그 자리에는 왐파노아그 부족사람들이 참석했다. 여기서 우리가 아는 추수감사절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이날의 모임을 첫 추수감사절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18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때 뒤돌아보니 1621년 추수 잔치가 자신들이 지키는 명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라고 역사박물관인 플리머스 플랜테이션의 케이트 시한 대변인은 말한다.
그리고 이 날이 공식명절로 선포된 것은 1863년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였다. 링컨은 남북전쟁 중 미시시피의 빅스버그와 펜실베니아의 게티스버그 등지에서의 승리를 감사하기 위해 이 날을 명절로 선포했다.
그에 더해 ‘첫 추수감사절’이라는 표현은 토착 원주민인 인디언들로 보나 유럽 사회로 보나 애당초 맞지가 않다고 로웬은 말한다. 이미 수세기 전부터 추수를 축하하는 잔치는 매년 거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교도들이 도착했을 때 플리머스는 이미 밭이 개간되고 우물이 있는 안정된 마을이었다고 로웬은 지적한다. 정착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땅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곳에서 살던 원주민들이 모두 시체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전염병이 돌아 주민들이 모두 죽었던 것이었다.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것도 반드시 사실은 아니다. 청교도들은 당시 홀란드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은 17세기 초부터 홀란드로 이주했다. 1607년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사람들처럼 청교도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북 아메리카로 왔던 것이라고 로웬은 말한다.
“아울러 이들은 신권정치 체제를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종교적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다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아울러, 필그림 즉 청교도들은 스스로를 필그림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필그림이라는 말은 1880년 즈음에 등장했다.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와전된 이야기는 청교도들이 농작물 재배를 도와준 인디언 원주민들을 초청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이 어떻게 한자리에 모여 같이 잔치를 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어로 된 기록에는 초청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왐파노아그 부족의 구전은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왐파노아그 추장이 그곳에 갔었을 것으로 볼 만한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시한은 말한다.
“추장의 부족 사람들은 그 지역의 시내 반대편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다른 가능성은 추장이 추수를 끝낸 후 외교적 방문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잔치가 음식과 게임, 기도 등으로 양쪽 문화가 함께 어울린 예외적 사건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청교도들을 도운 인물로 미국의 어린이들이 배운 스쿠안토 혹은 티스쿠안툼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가 청교도들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의 파툭세트 족은 왐파노아그 부족의 한 그룹으로 청교도들이 정착한 바로 그곳에서 살았었다. 청교도들이 도착해 다른 원주민들과 교역을 하고 외교적 교류를 할 때 스쿠안토는 통역을 맡았다. 아울러 옥수수를 재배하는 효과적 농사법을 가르쳐 주고, 고기가 잘 잡히는 곳들을 알려준 사람 역시 스쿠안토였다고 시한은 말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대개 거기서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 몇 년 전인 1614년 스쿠안톤은 영국인들에게 잡혀 훗날 스페인에 노예로 팔려갔다. 그 사이 영국에서 몇 년을 살았고, 그때 그는 영어를 배웠다.
1619년 그가 뉴잉글런드로 돌아왔을 때, 그의 파툭세트 족 전원은 천연두로 몰살당한 후였다. 그리고는 1621년 그는 청교도들을 만났다.
‘첫 추수감사절’ 음식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다. 1621년 잔치에 칠면조 요리 언급은 없다. 파이는 물론 없었을 것이다. 파이 껍질에 필요한 버터와 밀가루가 없었고 파이를 구울 오븐도 없었다. 청교도들이 농작물을 추수했다는 것, 왐파노아그 인디언들이 사슴 5마리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뿐이다. 가금류 요리가 있었다면, 아마도 오리거나 거위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옥수수 요리와 호박, 크랜베리와 강낭콩과 돼지고기 삶은 요리 정도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북미 대륙에 고구마는 없었다.
<
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