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기 논설위원의 淸論直說(청론직설)...이인호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교수)
▶ 문정부 정치적 목적이 정책 압도…지지자 부채의식 버려야
미, 대선결과 상관없이 보호무역 지속…한국 압박 심해질 것
산업 구조조정하고 실업 후유증은 노동유연성으로 풀면 돼
이인호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이 11일 서울대 교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다음 10년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어갈 마지막 기회”라며 “그러지 못할 경우 정체가 아닌 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호재 기자]
2020년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새해는 단순한 한 해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10년의 시작이다. 내년 2월 한국경제학회장에 취임하는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다음 10년은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이 대열에 올라서지 못하면 우리는 정체가 아닌 퇴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임기 반환점을 돈 현 정부에 대해 “정치적 목적이 정책 수단을 압도하고 있다”며 “정부 수립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지지자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를 지난 11일 서울대에서 만났다.
-다음 10년이 우리 경제에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가.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 문턱에 있다. 경제 규모로만 본다면 대부분 10위 안에 들어가지만 일본·독일 등과는 격차가 있다. 새로운 10년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는 것을 떠나 묵직한 체급, 즉 미국이나 유럽의 몇몇 선진국과 같은 대열에 올라갈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가 될 것 같다. 그 기회를 실현하느냐 못하느냐에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될 마지막 기회라는 뜻인가.
△거의 그럴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큰 규모의 국가들이 2류로 굳어진 경우도 있고 오히려 내려가는 일도 있다. 우리는 아직 올라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오르지 못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10년 안에 도약을 하면 일류 국가로 올라설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면 현 상태 유지는커녕 아래 단계로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와 같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꼽는다면.
△경제는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와 사회·문화 등이 같이 가야 한다. 규제나 제도만 바꾼다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금융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을 말할 때 나오는 것이 관치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을 뽑을 때 보면 추천위원들이 우왕좌왕하며 어디서 연락 온 것은 없는지 물어본다.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제도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도 그렇지만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는 것, 이것이 다음 10년 우리에게 필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전통은 결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 변화를 말하는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개개인이 지닌 정보나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사회적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우리도 시스템이 있지만 문화적 환경이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상명하복 문화에서는 어렵다. 우리는 인구 수도 많지 않다. 선진국이 되려면 일당백으로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년 경제 흐름에 대한 걱정이 많다. 먼저 글로벌 흐름은 어떨 것으로 보는지.
△관건은 역시 미중 무역갈등인데 단기간에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현지 경제학자들을 만나보면 도널드 트럼프가 무역분쟁을 일으켰다고 보기 힘들다. 민주당이나 진보적 생각을 하는 경제학자들도 중국이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트럼프처럼 예측 불가능한 전술로 협상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갈등의 요소는 계속 있다는 뜻이다. 미국 대선 결과를 떠나 무역갈등 기조와 보호무역 강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지난 5년처럼 신자유주의 체제로 막 확장돼 뻗어 나가는 것은 어렵다.
-무역전쟁이 한국에도 불안요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인데. 결국 통상 칼날이 한국을 겨냥할 것으로 보는가.
△미국에서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 말고도 “(미국에서) 너무 뺏어간다”는 시각이 있다. 중국 외에 한국도 자신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너희가 그 정도면 잘사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국 물건) 안 사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 그런 것이 이해가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시장을 더 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우리 경제의 흐름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인가.
△맞다. 외부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 부분이 너무 크다. (상고하저나 상저하고 등) 이런 부분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해외 부문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외 부문이 확 올라오면 상고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은 통제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해외 요인이야 그렇다 치고 국내 정책을 잘 펼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이 잘 안 보인다. 국내 정책은 우리의 통제력 아래 있는 것인데.
-국내 정책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의 의미는.
△(정부가)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핀셋(정교한) 대응을 해도 모자란데 중구난방이다. 여러 정치적인 목적이 정책수단의 선택을 압도해버린다. 정치적인 목적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욕심 탓에 정책을 선택하는 데 냉철한 이성을 흐리게 하는 것 같다.
-경제 정책들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인가.
△정권 수립 과정에서 도와줬던 노동자 등의 그룹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는 것 같다. 지지자들에게 보상을 해준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리적인 정책이 나온다. 최저임금 등 일부 속도 조절을 하면서 지지세력으로부터 약속을 안 지킨다는 비판을 받는데 기왕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이라면 제대로 올바르게 해서 우리는 인기보다 역사에 의해 판단 받겠다고 하는 것이 맞다.
-임기 절반이 남았다.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못 본 척할 수 없다. 광주형 일자리 등 여러 시도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다. 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이 같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구조가 낙후됐다든지 국제환경 등 여러 이유로 문제 된 곳은 닫고 옮겨갈 곳은 옮겨가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업 등의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꽉 잡고 있으면 양쪽이 다 망한다. 일단 풀어주면 다른 쪽에서 새 직장을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기술이나 경제구조 자체가 복잡하고 빨리 변한다. 우리 공무원들이 우수하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지는 않다. 과거에는 우수한 몇 사람이 애국심으로 나라를 끌고 갔지만 이제는 안 된다. 삼성전자에 훨씬 잘하는 인재들이 많다. 전문가들을 활용해야 한다.
-경제정책에서 재정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통화정책인데 최근에는 거의 작동이 안 된다. 기준금리를 조금 낮췄다고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경기가 안 좋은 것은 금융비용이 비싸서가 아니라 돈을 벌 곳이 없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아 돈 벌 곳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부 지출로 물건을 사주고 이전소득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재정을 어디에 얼마 정도를 쓸지 개념이 있어야 한다. 실업수당에 돈을 썼을 때에는 승수효과에 대한 계산이 서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재정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미세먼지대책에 1조원 이상 들어갔는데 미세먼지가 올해 생긴 문제도 아닌데 일반예산으로 들어갈 항목이 추경에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늘어난 재정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토론이 너무 없다. 돈을 썼는데 소득이 늘지 않아 세금으로 안 돌아오면 그것은 고스란히 미래의 빚이고 그런 돈은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지출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경제의 롤모델로 스위스를 언급했었는데.
△스위스는 단단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이를 토대로 국제환경이 계속 변하는데도 발전적인 경제운영을 한다. 우리 경제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같은 전략을 추구하기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국제환경의 영향을 덜 받으려면 기술력이 중요하다. 글로벌 무역 환경이 ‘다 같이 잘살자’ 이런 방식은 안 될 것이고 결국 기술력으로 버텨야 한다. 한순간의 기술력이 아니라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창의 시스템이 중요하다. 삼성처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지금 특허를 갖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특허가 만료되면 아무나 다 쓴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사회 전체가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도 양질의 노동력이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He is…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3년 영국 사우샘프턴대에서 조교수로 경제학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2001년에 서울대 경제학부로 자리를 옮긴 후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산업조직학회와 금융정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위원과 금융발전심의회 은행분과위원장 등으로 일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제학회 제50대 회장에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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