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기 막바지 600여명 사면, 선거자금 모금 가족도 포함
임기 막판에 범죄자들을 무더기 사면한 매트 베빈(사진·AP) 켄터키주 전 주지사의 행태를 두고 미 전역에서 공분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기독교적 가치에 따른 관용을 강조했으나, 아동 성폭행범을 황당한 사유로 사면하는 등 석연찮은 사면 배경으로 인해 정식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켄터키주 주지사 선거에서 앤디 베셔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공화당 소속의 베빈 전 지사는 지난 9일 공식 퇴임하기 직전 600여명을 사면하거나 감형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재기의 기회를 믿는 사람”이라며 “미국은 구원과 재기, 갱생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건립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면 대상자의 상당수는 마약 소지자나 경범죄자이지만 아동 성폭행범, 강력 살인범 등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베빈 전 지사는 특히 19일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9세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로 23년형을 선고받은 미카 쇼우틀을 사면한 이유에 대해 피해 아동의 처녀막이 손상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면 당시 행정명령서에도 “어떤 육체적 증거가 없는 증언만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고 썼다.
처녀막은 성적 활동의 증거로 이용될 수 없다는 게 의학계의 상식인데도 ‘처녀막 미신’에 근거해 재판 결과를 뒤집고 사면하자 피해 가족뿐만 아니라 사법당국과 의학계 등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쇼우틀을 기소했던 롭 샌더스 켄터키주 켄톤 카운티 검사는 “검사들이 수십년 동안 노력해 극복한 어리석은 무지의 주장”이라며 “성폭행 피해자의 2%만 가시적인 육체적 상처를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지역 언론들은 쇼우틀의 양부가 켄터키은행을 공동 설립한 사업가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2014년 경찰을 사칭해 가정집에 들어가 강도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17년형을 선고받은 패트릭 베이커 사면도 논란 대상이다. 베빈 전 지사는 이 역시도 정황증거밖에 없다는 이유로 사면했으나 베이커의 공범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더군다나 베이커의 형을 비롯한 가족들이 지난해 베빈 전 지사를 위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사면 과정에 정치적 유착 관계나 연줄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식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쇼우틀 사건을 맡았던 샌더스 검사는 CNN에 “불투명한 사면 과정에 대해서 수사하겠다”면서 “켄터키주 검찰총장이 지명한 특별검사나 연방법에 따른 전국적 차원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가 출신인 베빈 전 주지사는 강경 보수 그룹인 공화당 티파티 소속으로 2015년 켄터키주 주지사에 당선됐다. 하지만 켄터키주가 공화당 텃밭인데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해 지난달 민주당 후보에 패하며 재선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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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송용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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