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뉴밀포드 주택 살인서 헨리 리 박사, 유죄 결정적 증언
▶ 혈흔·지문 등 법의학적 증거 없어…2020년 석방돼 리 박사에 소송
1985년 12월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 중심 도시 하트퍼드에서 남서쪽으로 88㎞ 떨어진 뉴밀포드의 한 주택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당시 65세였던 집주인 에버렛 카. 카는 27차례나 칼에 찔리는 등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당시 17세와 18세였던 랠프 버치와 션 헤닝을 체포했다. 이들은 재판에서 각각 징역 55년과 50년이 확정됐다. 살인 중범죄로 옥살이를 30년 넘게 이어가던 버치와 헤닝의 삶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2019년. 코네티컷주 대법원은 이들의 유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법의학자의 증언에 문제가 있었다며 새로운 재판을 명령했다.
2020년 유죄가 기각되면서 석방된 두 사람은 경찰과 법의학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증거 조작, 악의적인 기소, 주요 무죄 증거 무시 등의 이유를 들었다. 마침내 21일 이 법의학자가 살인 사건 증거 조작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미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논란이 된 법의학자는 올해 84세의 대만계 헨리 리 박사. 코네티컷은 물론 미국 법의학계에선 유명한 인물이다. 주 공공안전국장과 법의학연구소장을 지냈고 뉴헤이븐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범죄 법의학 단과대 명예교수 직함도 갖고 있다. 한국에도 출간된 ‘실제 상황-닥터 헨리의 법의학 사건 파일’을 비롯해 수십 권의 법의학 관련 책을 쓰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는 특히 1985년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스타였던 O.J. 심슨의 살인죄 재판에서 혈흔 증거 관련 증언을 하며 유명해졌다. 또 9ㆍ11 테러 이후 법의학 수사,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사건 재조사 등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이날 판결로 리 박사의 명성에는 흠이 가게 생겼다. 빅터 볼든 판사는 “리 박사가 검사를 수행했다고 진술한 것 외에는 (혈액) 검사 수행 증거가 기록에 없었다”라고 지적했다며 AP는 전했다.
AP는 1989년 재판 과정에서 버치와 헤닝이 범죄와 연관됐다는 법의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들의 옷이나 차에서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고, 범행 현장에는 머리카락과 40개가 넘는 지문이 있었지만 두 사람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버치와 헤닝이 살인 후 청소를 하면서 만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건에서 발견된 붉은 얼룩 혈액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리 박사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제는 수사 당시 실시했다는 TMB 혈액검사 결과 서류나 사진 증거가 없고, 다시 진행된 검사에서 이 얼룩이 음성 반응을 보이면서 피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리 박사는 “57년의 (법의학자) 경력 동안 8,000건 이상의 사건을 조사했고 어떤 잘못이나, 의도적으로 잘못된 증언을 했다고 비난받은 적이 없다”며 항변했다. 또 이번 판결에 맞서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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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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