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의 법칙(Five Second Rule)이란 걸 고등학교 다니던 딸에게서 배웠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다가 감자칩이든 뭐든 바닥에 떨어지면 여자애들은 그냥 포기하는데, 남자애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내 잘 이해한다). 얼른 주워서 입에 넣으면서 “파이브 세컨 룰”을 선언함으로써 주변의 ugh gross 쯧쯧 으윽 저런저런의 다양한 반응들을 일거에 물리친다는 것. 바닥의 균들이 음식에 침투하기 전에 먹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아무런 근거 없는 애들 농담이다. 지난 세기 후반에 퍼진 속설이다.
낄낄거리며 이 놀라운 과학지식을 전수해준 따님은 학교에서는 어쩌는지 몰라도 집에서는 종종 이 법칙을 몸소 실천하곤 했다. 과학적으로 학설이란, 반복된 실험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유전학적으론 ‘더러븐’ 쪽으로도 날 꼭 닮은 딸이기에.
5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의 토막들. 이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때문에 하루 기분을 잡치기도 하고 한 이틀 행복해지기도 한다.
뒤에 나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매너의 5초. 인터체인지에서 대로로 진입하려는 운전자가 끼어들려고 하면 액셀 밟아 경쟁하지 않고 앞서 보내주는 여유의 5초. 터져나오는 상소리 한마디를 입술 물어 막고 숨 한번 크게 쉬어 가슴 아래로 다져내려보내는 그 5초.
쇼핑 내내 시식 코너 빠짐없이 섭렵하며 유유자적 순방하다가 계산대만 가까워지면 카트 잡은 손에힘을 쥐고 한명이라도 적은 레지스터 줄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사람들,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어느 어느 나라 사람들이 주로 그러더라고 흉을 보려는 게 아니다. 내가 그랬어…. 그게 나였어.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슬로우 비디오로 지나간다. 5초의 아까움이 덜하다. 꼭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닌 성 싶다. 물리적 시간으로만 따지면야 올 날이 간 날보다 짧으리란 게 너무도 명백해졌으니 1분 1초가 더 아깝고 아쉬워야 하니까.
나이를 먹어, 미국에 오래 살아서도 물론 있겠지만 정직하게 따져보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이리라. 땅에 떨어진 음식, 초 재어가며 줍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내 불안과 고민의 이민살이였는데 은퇴의 시기에 이르니, 그래도 숨이 쉬어진다.
안빈낙도의 기준이야 인격 수양에 따라 다르다고도 하겠지만, 난 물질의 결핍을 마음으로 다스릴 그럴 위인이 못된다. 항산에 항심이 깃듦을 믿는다. 항산 없는 사람들에게 항심 없음을 꾸짖어 차별을, 혐오를 보이지 말 일이다.
한편 5초의 법칙은 자기 계발 분야에서도 차용되고 있다. 귀찮고 성가시더라도 하여야 할 일은 주저 말고 당장 시작하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안에. 그러면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자명종 소리 울리면 팔딱 일어나라고, 그러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그런 책도 나와 있다. 멜 로빈스(Mel Robbins)라는 인생 상담사가 2017년에 펴낸 ‘The 5 Second Rule’인데 테드 강연 동영상이 인기를 얻어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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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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