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 전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경합주들의 향배, 그 중에서도 선거인단 20석의 펜실베이니아주에 눈길이 쏠린다.
내게는 펜실베이니아를 향한 막연한 호감이 있는데, 그건 미국에 와서 처음 사귀게 된 입양가족이 있어서다. 그곳의 오래 된 퀘이커 집안이다. 영국의 찰스 2세가 빚값 대신 내준 식민지 아메리카 땅에 퀘이커 지도자 윌리암 펜은 종교의 자유라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펜(Penn)의 숲(Sylvania), 펜실베이니아로 퀘이커 친우들은 물론 위그노, 아미쉬, 메노나이트, 루터파들이 종교 탄압을 피해 찾아왔다. 해리슨 포드의 영화 위트니스에 등장하는 아미쉬 마을이 바로 여기 랭커스터 카운티에 있다. 밀크 초콜렛으로 유명한 허쉬 마을은 창업주의 고향인 메노나이트 농촌 지대로 안정적으로 우유를 확보할 수 있는 입지로 선정됐다. 철강업으로 흥했고 미국에서 첫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시작되었다는 베들레헴은 독일계 모라비아 교도들의 정착지였다. 퀘이커 교도들의 땅은 그렇게 소수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활짝 열려져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신앙을 고수하다가 옥고를 치른 바 있는 펜의 평화주의는 원주민들에게도 예외 없어 초기 콜로니들 중에 드물게 공정한 토지거래로 평화 공존을 이끌었다. (원주민이 살던 땅을 총칼로 빼앗은 게 아니다, 돈 주고 정당하게 샀다는 목소리들이 있는데 그건 실상을 호도하는 식민지 지배자들의 흔한 궤변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이상은 당대에 그치고 말았다. 그가 죽자 아들들의 생각은 달랐다. 집안의 빚을 청산하고 재산을 쌓아서 기득권 체제 안에 자리를 굳히는 것이 인생 목표였다. 신앙도 국교회로 돌아갔다. 아들들 가운데 특히 토마스는 지주들을 규합, 중세의 봉건영주마냥 콜로니를 통치하려 들었다.
선대에 맺은 원주민과의 공존도 내팽개쳤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737년의 토지거래다. 땅을 팔기로 했다는 해묵은 증서를 레나페 부족에게 들이밀어 ‘사람이 하루 반 걸어서 가는 거리’ 만큼의 땅을 사들였다. 여기에 꼼수, 토마스측은 뜀박질 가장 잘 뛰는 선수 셋을 뽑아 내보냈다. 숲길도 다듬어 놓고. 죽어라 뛰어 그 중 하나가 다달은 거리가 70마일. 40마일 정도의 땅을 내주는 걸로 알았던 원주민들은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름하여 Walk Purchase, 십수 년 전에 원주민 후손들이 계약 무효 소송을 걸며 역사에 다시 등장한 바 있다. 소송은 기각됐다.
지주들로 구성된 식민지 지배층의 전횡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사람들은 윌리암 펜의 믿음을 같이 한 퀘이커들과 새로 떠오르는 상공인 계층이었다. 그중의 대표가 벤자민 프랭클린(사진)이다. 그 양상은 곧이을 아메리카 독립전쟁의 축소판이자 전조라고 하겠다. 본국 영국+식민지 지주>상공인+소농, 갈등이 비등점을 넘어서 무력충돌로 결판 났으니 수사학적 표현 아닌 말 그대로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프랭클린 역시 펜처럼 자식 복이 없었다고 하겠다. 친구가 등을 돌리고 형제가, 부자가 갈라서는 혁명의 소용돌이가 그의 가족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명성을 업고 상류층에 편입, 뉴저지 거버너에 올랐던 아들 윌리암은 종내 본국 충성파로 독립군에 맞서다가 영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있는데 건국의 아들들은 없는 이유인가.
미국의 역사에서도 자식농사 내 뜻대로 안된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설은 통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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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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