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인상·약달러 효과는
▶ 미, 기축통화 ‘달러’로 자금 조달
▶ 저축률 낮은데도 기업 투자 왕성
▶ ‘달러 가치’ 현재 미의 번영 비결
▶ 트럼프, 관세로 무역적자 개선 추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경기 침체 우려 등을 반영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연합]
무리해서 달러 지위 떨어뜨린다면, 제조업 기반 상실한 미 불황 초래
자금이탈→ 금리 상승→ 부동산 타격, 세계 경제 악순환 시나리오 불 보듯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된 스티브 미란은 작년 11월“달러 가치 고평가로 미국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담긴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관세 인상을 통해 미국 기업 경쟁력을 개선시키는 한편, 1985년‘플라자 합의’와 같은 적극적인 달러 약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기는 하나,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달러 가치 상승으로 미국이 손해를 본다?
미란 의장의 주장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미국 무역수지와 달러 가치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02~2008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기간 달러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졌지만 미국 무역수지는 끝없는 적자 행진을 펼쳤다. 반대로 달러 가치가 바닥을 치고 상승한 2009년부터는 무역적자가 크게 개선됐다. 미란 의장의 주장과 정반대 현상이 거의 10년 넘게 지속된 셈이다.
달러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무역적자가 늘어난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 제조국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 기업들이 몰락했고, 더 나아가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달러 약세 효과가 없다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진 않다.
■관세 부과한다고 미국 무역적자 줄어들까100% 혹은 그 이상의 관세를 중국 제품에 부과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 이를테면 베트남이나 인도로부터의 수입이 더욱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1990년대부터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1989년 미국 제조업 종사는 1,806만 명이었는데, 2010년에는 1,14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인구는 2억4,739만 명에서 3억984만 명으로 늘어났으니,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이 매우 빠르게 줄어든 셈이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 상실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애플은 2013년부터 텍사스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이 공장에서는 아이맥 등 다양한 컴퓨터 제품을 생산하는 중이다. 특히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이 공장을 방문해, 미국으로의 제조업 회귀를 보여주는 사례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은 이후 중국의 생산시설을 베트남과 인도로 옮겼을 뿐, 추가적인 미국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근로자들의 근태에 심각한 문제를 경험한 데다, 맞춤형 나사와 같이 필요한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급업체를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은 “미국이 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숙련된 제조업 근로자가 충분하지 않다”고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했다.
■미국의 적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이상의 분석에서 보듯, 미국 적자 문제의 시원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루아침에 제조업 숙련 근로자를 늘릴 수도 없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부품을 적기에 공급해 줄 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도 만성적인 적자 행진을 벌일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투자와 저축 그리고 경상수지의 관계에 주목해 보자. 아래 [표2]는 미국의 투자율과 저축률, 그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적자의 변화를 보여준다.
저축률에서 투자율을 뺀 값이 경상적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면 투자율이란 GDP에서 차지하는 기업 투자 비중을 측정한 것으로 22% 내외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가계의 저축이 필요하다. 누군가 새로 발행되는 주식을 사주거나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기업의 투자에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황이 닥쳐 기업이 보유한 현금이 고갈되는 시기에는 더욱 저축이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의 평균적인 저축률은 19%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세간의 인식과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코로나19 팬데믹 등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축률이 매우 낮은데도 왕성한 기업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두 가지 불균형이 발생한다. 첫 번째 불균형은 경상수지 적자다. 경제 내에서 감당할 수 있는 레벨 이상의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해외에서 막대한 생산설비를 수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탓이다. 두 번째 문제는 더욱 직접적인 것으로, 해외에서 막대한 투자 자금을 빌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두 번째 문제는 달러라는 기축 통화를 보유하고 있기에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각국 중앙은행과 연기금이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달러 채권을 적극 매수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및 자율주행 그리고 전기차 같은 분야에서 세계 톱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
■관세 인상 및 달러 지위 하락 효과는? 심각한 불황!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강력한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해명된 셈이다. 기축 통화의 지위를 활용한 손쉬운 자금 조달 덕분에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었고, 일자리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늘어났던 것이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문제 삼는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와 만성적인 무역적자’가 미국의 번영을 가져온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달러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 그리고 한국 등 주요 제조 공업 국가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는 미국 내 주요 제품의 가격 인상 러시를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내구재일수록 더욱 심각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GM이나 포드 같은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중국 등으로 부품 조달처를 다변화했기에, 관세 인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당면할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나 가전제품 같은 제품의 수요가 매우 크게 움직이는 데 있다. 스마트폰 액정이 나가더라도 테이프를 붙여서 버텨야 할 수 있고, 자동차 소음이 발생해도 자동차 정비공장을 방문해 수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일 먼저 한번 사서 오랫동안 쓰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위축될 것이며, 이는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달러화의 지위 하락은 채권 발행 금리의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36조 달러의 채권 중에 24%를 해외 투자자들이 차지하기에, 달러 지위가 흔들리는 순간 대규모 자금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제일 먼저 부동산시장이 타격을 받는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주택 매수세가 위축되는 데다, 기존 주택 보유자도 경기 둔화에 대응해 보유 주택을 매도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급전 직하하고, 대신 경상적자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기업의 투자가 중단되고 가계의 소비가 위축되며 저축률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경상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다 심각한 불황을 유발하는 결과를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등 선진국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참으로 두려운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부디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된 경제학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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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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