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30여년 넘게 거주한 기자의 지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육식주의자인 이 지인은 “한국에서는 쌈에 고기를 싸 먹지만 미국에서는 고기에 쌈을 싸 먹는다”고. 그런데 요즘 고기 값이 너무 올라서 이제는 미국에서도 쌈에 고기를 싸먹어야 한다고. 그것도 소고기는 너무 가격이 올라 엄두도 못 내고 삼겹살을 대신 싸 먹어야 한다고 푸념했다.
월스트릿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미국 역사상 미국인들의 삶과 경제에 가장 영향을 끼친 주요 사건 중 하나로 정의했다.
기자도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이제 미국의 삶도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정의해야 할 것 같다. 1776년 건국하며 올해로 건국 249주년을 맞은 미국의 2기 역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을 공식 선언한 이후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팬데믹의 가장 큰 여파는 미국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팬데믹 이전 미국의 물가는 정말 안정됐었다. 안정된 물가 토대 속에서 풍족한 식품과 생필품 공급은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 ‘팩스 아메리카’의 부를 상징했었다.
유럽에 가본 한인들은 알겠지만 많은 서유럽 국가들도 선진국에 속하지만 음식 값이 비싸고 모든 것이 미국만큼 풍족하지 못하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 팔뚝만한 스테이크를 보면 감탄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이는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은 소고기 스테이크가 ‘금값’이 됐다. ‘소고기 스테이크가 너무 그립다’는 말은 요즘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연방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다진 소고기 평균 소매가는 파운드당 6.25달러로, 전달의 6.12달러 기록을 넘어 두 달 연속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다른 부위의 소고기 가격도 동반 상승, ‘초이스’ 등급 스테이크는 13.55달러, 뼈 없는 라운드 로스트는 7.91달러, 초이스 비프는 9.69달러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소고기 가격은 1년 새 11.5% 급등했으며, 특히 스테이크류는 같은 기간 12%나 치솟았다. 또 이미 지난 6월 소고기 평균 소매가격은 파운드당 9.26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계속 상승하고 있다.
1개에 쿼터 정도, 12개가 3달러 이하로 미국인들의 아침 밥상 주재료인 계란도 한때 12개가 10달러를 넘는 경우가 많다. ‘금란’이 되며 화제가 됐던 계란 가격은 최근 내렸지만 여전히 6달러 이하에 사기는 어렵다.
시카고대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53%)이 식료품 비용을 생활의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다. 이같은 응답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미국에서 물가가 특히 무서운 것이 급여도 많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물가가 안정되면서 급여도 안정된 수준이기 때문이다.
요즘 외식을 하면 치솟은 가격에 놀라곤 한다. 그런데도 식당 업주들은 현재의 가격으로도 재료값과 인건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업주들은 추가 인상을 할 경우 줄어든 고객이 더 감소할 것을 걱정하며 가격도 올리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많이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싸오고 스타벅스 커피도 줄였다. 상사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 눈치를 보며 조용히 사라진다고 한다. 회식비용도 줄었는데 자비로 직장인들의 점심을 사주는 것도 부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혼밥’이 늘었는데 같이 식당가서 밥 먹는 것도 부담되고 누가 돈을 지불할지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대다수 식당들은 오후 8시, 늦어도 9시 전에 문을 닫는다. 고객도 줄었지만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인들은 예전같이 늦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출근이 보편화되기도 했지만 밖에 있으면 나가는 것은 돈 밖에 없으니까 집에 일찍 들어간다.
집에 가서는 전기도 마음껏 키지 못한다. 한인들은 저녁 시간대 미국인들의 집이 어두운 것을 보면 놀라곤 한다. 폭염이 남가주를 휩쓸고 있지만 전기세도 많이 올라 에어컨 사용도 자제한다. 기자도 지난해 폭염 때 에어컨을 매일 사용했다가 2달치 전기세로 1,000달러 ‘폭탄’을 맞은 후 에어컨을 자제하고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샤핑 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포장 제품을 사거나 쿠폰을 사용하고, 필수품만 구매한다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인 관세 정책에 따른 물가 상승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 소비자들이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저렴했던 미국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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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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