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서둘러 디스어포인트먼트 산으로 향한다. 산 이름에 대한 실망스러운 마음에 간밤의 잠도 설쳤다. 대부분 산, 산맥의 이름은 그 산을 처음 올라가 등록한 사람이나 그 지역에 공헌한 사람의 이름이 붙어있다. 그런데 이 산의 이름은 ‘실망한 산’이라니! 무슨 연유로 산 이름을‘희망, 소망’도 아니고 실망이라고 지었을까? 사시사철 여러 번 산행 했지만, 산과 자연은 나를 한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다.
산으로 오르는 꼬부랑길 2번을 타고 등산로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양쪽으로 노란 스카치 브룸(scotch Broom)이 떠오르는 햇빛에 반짝인다. 산 곳곳에 유카꽃이 피고지고 있다. 사막의 뜨거운 날씨에도 불평 없이 제자리에서 우리를 즐겁게 맞아주는 야생화까지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소방도로로 약 1.5마일(2.4km)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월요일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다른 등산객이 없다. 산과 내가 한 몸이 되어 서로에게 귀 기울여 준다. 가끔 작은 새들이 우리 얘기에 장단을 맞춘다. 상수리나무, 향나무, 소나무와 함께 호흡하며, 꽃들의 향기를 벌 나비와 나누며 쉬엄쉬엄 올라간다.
얼마를 올랐을 때 왼쪽으로는 샌 가브리엘 산(San Gabriel Peak,6,164 ft.)이 있고 오른쪽이 디스어포인트먼트 산(5,963ft=1,818m)이 보인다. 150년 전에 윌러 중위(Wheeler Lieutenant)와 미국 지질조사원 그룹이 이 산을 인근지역의 최고 지점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다음 삼각측량 지점으로 결정한후 이 산에 올라와 보니, 동쪽으로 약 800미터 떨어진 곳에 산 가브리엘 정점이 약 60미터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져 측량 지점을 옮기게 되었다. 이에 윌러 중위가 크게 실망하여 지어준 이름이다. 이 일로 그는 3년을 병가를 냈을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에 한평생 살면서 실망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일로 실망한다. 때로는 자신에게 와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할 때도 많다. 실망이란 자신의 희망이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 발생하는 슬픔이나 불쾌감을 말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대학 시험에 낙방하여 내게 큰 기대를 했던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주위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좌절감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어 죽고 싶었던 적이 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겠지만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씨앗을 뿌리듯이 우리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회나 국가에 기대한다. 기대한 만큼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때 실망, 좌절감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감정을 인정하고 누군가와 나누며, 배움의 기회로 삼고,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라고 심리학자는 말한다.
이름과는 다르게 산은 역시 나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솔향기 그윽한 바람을 맞으며 꽃길을 걸어 정상에 올라오니 여러 개의 송신탑이 서 있다. 나이키 미사일 기지였는데 1965년에 군사 무선중계국이 되었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마크함 산, 산 가브리엘산, 멀리 시가지와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실망한 산( Disappointment Mt. )을 약속의 산(Apppointment Mt.)으로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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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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