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일을 당했다. 신문 기사에서 이런 경우를 읽을 때는 저 사람이 얼마나 기가 막힐까 했는데. 내가 그런 처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행사 참석차 한국에 머무르던 친구와 나는 짜투리 며칠을 이용하여 베트남으로 가기로 했다. 하노이 쌀국수를 먹고, 하롱베이의 풍광을 즐기자 했던 신나는 계획은 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서 무너졌다. 친구는 당당히 입국수속을 마치고 들어갔지만 나는 덜컥 덜미를 잡혔다. 비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내민 것은 비자가 아니라 ‘비자 신청서’였다. 이메일로 온 Visa Application Form이라고 적힌 것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엄벙덤벙이 화를 불렀다. 나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입국 심사관은 단호했다. “이건 비자가 아니라 비자 신청서 입니다.”
곧이어 공항 직원이 내 여권에다 비행기 탑승권을 끼워서 들고 나타났다.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추방이었다. 그곳에 찍힌 시간은 12시 55분. 그때의 시각은 1시 17분. 벌써 탑승 시각이 지났다고 하니 직원은 염려 말라며 내 짐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부랴부랴 친구랑 연락을 했지만 죄 없는 친구는 그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VIP인 양 직원의 안내를 받아 특별(?) 통로를 거쳐 이미 닫혔던 비행기 문을 다시 열게 했다. 베트남 땅을 밟은 지 한 시간 만에 하늘 구경만 하고 다시 돌아온 셈이다. 도대체 이게 뭔가? 한나절 동안 두 나라 사이를 왕복하다니. 조국을 위해 발로 뛰는 외교관도 아니고 바쁘게 다니는 비즈니스 우먼도 아닌데.
한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대로 향하여 터벅터벅 걸어나가다가 또 덜미를 잡혔다. 공항 직원이 뛰어와 내 이름을 확인했다. 고개를 끄덕이니 조사가 필요하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다른 나라에서 입국을 거부 당하여 쫒겨 온 사람을 그대로 받아줄 수 없다는 거였다. 특별조사실로 들어가 이런저런 질문에 답했다. 00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했군요? 하는 질문에는 모국을 버린 것 같아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조카에게 이런 외숙모가 있냐는 전화 확인으로 조사가 끝나고 겨우 풀려났다.
아직도 베트남에 있을 친구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여행사 직원이 있었기에. 혼자라도 다른 팀에 끼어서 계획한 일정을 보내고 오라 했지만, 친구는 기어이 다음날 새벽 1시 비행기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나의 실수가 멀쩡한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을 누구도 피할 수 없듯이, 나 역시 예외가 아님을 실감한다. 누군가가 당한 일을 나라고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인생은 때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우리를 시험대에 세우고 ‘불가’를 선언하기도 하는 것을. 황당함을 빌미로 우리를 단련시키기도 하는 것을. 그때마다 억울함만 곱씹는다면 웃으며 나이 들 수 없지 않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일 거다.
나는 지금 ‘추방’이라는 낙인을 찍은 베트남에게 다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을란다. 씩씩거리다가. 기어이 정확한 비자를 들고 다시 가리라. 하는 두 마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새벽 6시의 인천공항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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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소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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