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금강송으로 완성된 최기 목공예가의 메주틀
2024년 가을, 팔로 알토의 한 카페에서 임보은 티디렉터와 함께하는 차회가 열렸다.
전상근 도예가의 다기 세트와 최기 목공예가의 다식용 수저로 차려진 차회의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셨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날 처음 만난 최기 목공예가의 수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임보은 티디렉터가 정성스럽게 큐레이팅한 다식이, 수저를 지나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절로 둥둥 떠올라 입안에 차오른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차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최기 목공예가에게 전송한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감탄이 담겼다.

간수를 넣은 콩국물이 순두부로 응결되는 과정

메주틀을 전달받은 장선용 선생님

메주틀에 넣은 순두부를 1시간 정도 눌러 만든 두부
“작가님 오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맛, 숟가락으로 뜨는 맛이 곁들여져 참 맛있는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무엇으로 (음식을) 먹느냐’가 ‘무엇을 먹느냐’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통 한식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발효 음식의 근본, 메주를 빚는 메주틀로 생각이 옮겨가며 ‘무엇으로 (음식을) 만드느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장선용 선생님 댁에서 나는 처음으로 메주틀을 마주했다.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그 틀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최기 목공예가였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 연락해 메주틀 제작이 가능한지 물었다. 때는 2025년 8월이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연락에도 최기 목공예가는 정성스러운 답변을 주었다. 시간을 내어 메주틀을 만들어보겠다는 확답을 받았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폴짝 뛰어올랐다.
최기 목공예가의 작업은 옛날 어르신들을 만나 메주틀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 듣는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메주틀에 천을 깔고 콩을 넣은 뒤 천으로 감싸고 그것을 발로 밟아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태백 종가 안주인 어른께 전해 듣고는 이 메주틀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방망이를 함께 만들거나 발로 밟기 편한 뚜껑을 함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최기 목공예가의 사려 깊은 마음은 메주틀로 사용될 나무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가 선택한 나무는 강원도 금강송이었는데 나무에 방부처리나 인공적인 건조과정이 들어가지 않은 채 자연 건조된 나무였기에 음식을 담는 목적의 메주틀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중요한 목재 선택 이후에는 직접 제작한 도면에 맞게 금강송을 재단하고, 대패를 사용해 판재로 켜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못을 전혀 쓰지 않기 위해 주먹장맞춤으로 짜맞춤을 했다. 여기에 더해 메주틀 뚜껑 윗면의 중앙 부분에는 우리나라 조선목가구에서만 볼 수 있는 ‘단순미와 자연미의 상징’, 먹감나무를 배치하였고, 사포와 조각도로 다듬은 뒤 100% 천연 벨기에산 루비오모노코트 오일을 4번 발라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지극 정성이 들어간 메주틀이 또 있을까?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미국에서 한식이 뿌리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재료를 구할 수 있고, 레시피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빠른 속도와 즉각적인 결과에 익숙한 이곳에서 한식의 근간이 되어온 발효의 시간은 종종 생략되거나, 대체 가능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한식의 뿌리를 다시 생각해 보려면 가장 처음에 놓아야 할 것은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이 되기 전의 시간을 받아내는 도구, 메주틀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기 목공예가는 어떤 나무가 메주의 무게를 받아낼 수 있는지, 어떤 결이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도구가 여러 계절을 지나며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도 괜찮을지를 오래 고민한 뒤 메주틀을 만들었다. 메주틀은 한 번 쓰고 마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반복해서 맡겨야 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성된 메주틀을 내 손에 쥐었을 때, 그 안에는 아직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은 것이 그 안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메주틀을 들고 장선용 선생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이 메주틀을 선물처럼 건넸지만 사실은 질문을 드린 것과 같았다. 이 메주틀로 무엇을 먼저 해볼 수 있을지 말이다. 선생님은 잠시 메주틀을 살펴보시더니 메주보다 먼저 두부를 만들어 먹자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 내가 가장 먼저 얻어먹은 것은 메주도, 장도 아닌 막 만들어낸 두부였다. 삶은 콩을 갈아 면보에 걸러내고, 천천히 간수를 더해 서두르지 않고 굳힌 두부. 갓 만들어낸 두부를 아무 양념 없이 한 입 베어 문 순간, 이 메주틀이 ‘시간을 담는 도구’로 새롭게 태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기 목공예가의 메주틀로 만든 장선용 선생님의 두부 레시피]
레시피 정리: 김성미
재료: 메주콩 2컵, 물 20컵, 간수 3큰술, 들기름 2큰술
만드는 법
1. 메주콩을 박박 문질러 깨끗이 씻은 뒤 콩(2컵)의 2배 분량의 물(4컵)을 붓고 불린다. 콩은 하룻밤, 묵은콩은 하루에서 이틀 동안 불린다. 불리는 동안 물 위에 떠오르는 콩은 상한 것이므로 버리고, 불린 콩을 반으로 쪼개 속까지 충분히 불었는지 확인한다.
2. 불린 콩과 콩의 5배 분량의 물(10컵)을 이용해 블렌더에 2번 나누어 곱게 간다.
3. 큰 냄비에 콩의 4배 분량의 물(8컵)을 끓인다. 물 2컵은 콩국물이 넘칠 때 사용하도록 따로 준비해 둔다.
4. 냄비의 물이 끓으면 갈아 놓은 콩국물을 붓고 바닥이 타지 않도록 주걱을 사용해 바닥까지 긁어가며 저어 준다. 어느 정도 끓으면 들기름 2스푼을 넣고, 끓어 넘치려 할 때마다 따로 둔 물을 반씩 나누어 부어가며 끓인다.
5. 4의 콩물이 뜨거울 때 면보에 부어 콩국물을 짜낸다. 주걱으로 눌러 짜거나 한약 짜듯 막대기 두 개로 비틀어 짜도 된다.
6. 짜낸 콩국물을 다시 냄비에 붓고 약한 불에 올린다. 그다음 간수를 한 큰술 씩 넣으며 아주 천천히 저어 순두부 상태로 만든다.
7. 순두부가 되고 남은 물이 노랗고 맑아지면 불을 끈다.
8. 냄비 위에 식힘망을 올리고, 마른 면보를 덮어 15~30분 정도 뜸을 들여 숨두부를 만든다.
9. 두부틀에 젖은 면보를 깔고, 뜸 들인 순두부를 살살 부은 뒤 면보로 덮는다.
10. 9를 무거운 것으로 30분~1시간 눌러주면 두부가 완성된다.
참고: 간수는 미국에선 온라인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나 가격이 비싸다. 간수를 집에서 만들 때는 천일염(간수 안 뺀 굵은소금) 3컵에 물 1컵을 넣고 2~3시간 후에 체에 밭쳐 쓰면 된다. 레몬 식초를 넣는 경우 응고는 되는데 두부 맛이 시어서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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