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15년동안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몸이 났다는 것이다.
난 정도가 아니라 비만해졌다고 해야 솔직한 표현이겠다. 열심히 먹고 운동량은 적으니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내가 날로 뚱뚱해져 간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한 탓도 있다. 큰 키의 거구들이 살을 출렁이며 지나다니는 것을 많이 본 탓에 한국형 뚱보인 나는 아직 저 정도는 아니려니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운동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한다. 운동신경이 무뎌 자전거도 타지 못하는 내가 할 수있는 유일한 운동이 수영이다. 의사의 강력한 권유에다 건강을 생각해야할 나이인지라 일과후 스포츠센터를 드나들고 있다. 느릿느릿 힘 안드는 배영과 자유형으로 몇번 왕복을 하고 잠시 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나를 유심히 보던 이가 내쪽으로 걸어왔다. 보기보단 수영을 잘 한다거니 하는 말을 하겠지 싶어 내심 흐믓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질문인 즉 "그렇게 큰 댓자 수영복은 어디에서 구입하셨어요? 우리 시어머니 구해 드리려구요" 이러는게 아닌가. 과히 날씬하지도 않은 본인이 입을 것도 아니고 뚱뚱한 시어머니용이라나? 이쯤 되면 ‘중년의 품위’니 ‘푸근한 인상’이니 하는 말로 위로를 삼을 단계는 지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나의 비만이 심각히 고민해야 할 문제로 대두되는 순간이었다.
일본타운에 가면 앙증맞고도 단작스러운 음식들을 접한다. 늘 먹다가 만 기분이 들지만 식당주인이 친절하기에 간다. 중국음식은 푸짐해서, 한국음식은 친밀해서, 월남음식은 건강식이라니 먹어둔다. 멕시칸음식은 우리의 입맛에 맞는 것이 신기해서 또 먹는다. 이태리음식인 피자와 스파게티는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거들고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햄버거와 프라이드치킨은 당연히 먹고 있다. 지난 일요일엔 남편의 친구인 유태인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향신료를 많이 쓴 음식을 호기심에 맛보았다. 이렇듯 내게는 음식에 관한 한 적응을 잘하는 순발력이 있다. 먹는 것을 즐기기에 뚱뚱하게 되었는지, 뚱뚱한 체형의 관리차원으로 먹게 되었는지 전후의 분간은 안 되나 먹는 것이 좋고, 무엇이든 먹는 것에 비유하면 이해가 빨리 온다.
한동안 미국의 문화를 멜팅팟에 비유했었다. 그럴때면 커다란 냄비에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어 푹 끓인 스튜를 상상했다. 오래도록 고아서 원래 재료의 독특한 맛과 향은 없어지고 어우러진 맛을 추구하자는 뜻에서 여러 인종이 섞여사는 이 나라가 내세운 정책이었다. 요즈음엔 각 인종의 개성은 그대로 존중하면서 다양함속의 조화를 이루자는 뜻의 샐러드 보울 정책을 추구한다. 하나하나 씹으면 고유한 맛이 살아있고 소스로 버무리면 또 다른 맛을 내는 샐러드에서 착안한 기막힌 비유 라고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채식을 강조하는 시기와도 맞아 떨어지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다루는 캠페인성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나는, 아니 한국인은 샐러드 보울속의 무슨 재료일까를 생각해본다. 누구나 즐겨먹는 상치일까 싱그러운 오이일까, 향긋한 과일일까? 우리아이가 싫어하는 파슬리인지 뻣뻣한 케일인지, 냄새가 역해서 더러는 싫어하는 칠란트로가 아닌지. 먹다가 샐러드 보울속에서 골라내어 버려지는 재료가 아니기를 바래본다. 싱싱한 샐러드로 나의 살빼기에 진전이 있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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