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버지’라는 소설을 읽었었다. 한 평범한 회사원인 아버지가 어느 날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가족들 몰래 그의 삶을 마무리해 가는 내용인데, 죽음을 앞두고서도 가족들을 위해 헌신을 다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 동안 우리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같이 놀아주는 시간 없이 새벽같이 나갔다 늦게 들어온다고, 집에서 쉬는 시간이 되어도 잔소리만 하고 피곤하다며 하루종일 TV만 본다고, 어머니랑 아이들은 불평을 한다. 이유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나의 아버지를 돌아보건대, 어린 시절 아버지는 높으시고 엄격하고 무서운 분 이셨으면서도 항상 우리들에게 불평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어깨에 닿는 왜소한 아버지를 보게되고 이제는 호통치실 힘조차 없으시며 씁쓸히 담배 피우시는 어깨가 축 쳐진 뒷모습을 보게되면서 너무나도 야윈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이 난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그렇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우리는 자라면서 수없이 노래했건 만, 정작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어디에서 불러보았던가 ? 그렇다고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만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결혼하여 자식을 두고 아이들로부터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으며 이제야 비로소 뒷모습 바래 가는 아버지의 흔적을 다시 되짚어 보며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하나 깨달아간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기에 나 역시 아이들이 나를 알아주던 아니던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자화상을 보여 주고싶다.
요즘 고국에는 작자 미상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이 인터넷을 통하여 퍼지기 시작하면서 잊혀져가던 우리네의 아버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그 글을 읽으면서 가슴에서 북돋아오는 설움을 느낀다 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 다가온다. 특히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고향하늘을 떠올려보고, 그 하늘아래 게시는 부모님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형편상 고향으로 달려가지는 못하더라도 중추 한가위 둥근 보름달을 보며 그 달에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그려보고 가슴속에 묻혀 있었던 것을 큰 소리로 한번 불러 보고싶다.
’아버지~’ 그 사무쳤던 이름을.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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