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문협으로부터 신문에 낼 목요 칼럼에 대해서 말씀은 있었지만 오늘 이 메일 편지함에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다음주에 시작되는 긴박함이 함축되어 있어 다소 긴장되고 걱정도 되었다 . 나는 치과 기공소에서 일하기 때문에 고객과 직접적인 관계없이 음성적으로 숨어 일하는 편이다. 더욱이 이빨을 만드는 일 이기에 일과 함께 시간 속에서 생각하며 일 할 수 있는 분위기 있는 공간 때문인지 내가 하는 일이 더욱 좋아 직종을 천직같이 여겼다. 이렇게 26년을 고스란히 이빨 만드는 일로 세월을 보내고도 또 보내야 하는 10년을 머리 속으로 헤아려본다.
그래서 오늘도 무엇을 쓸 것인가 하고 생각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건망증으로 상실될 말들을 미리 메모해 놓았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잿빛 하늘은 스산하다. 샌프란시스코 빌딩들은 비에 목욕한 듯 말끔히 씻겨져 있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따고 집으로 오는 시간은 유일한 나의 도서실이 된다. 하루 일과에서 출 퇴근시간을 합한 사십분은 한국에 있은 시인, 작가를 지면으로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읽은 유일한 여분의 시간이다.
어느새 버스는 종착점에서 승차시키고 떠밀려 내듯 내려놓고 간 버스는 미련 없이 벌써 저만치 사라져 가고 있다.
새 봄도 어느 듯 만연한 처녀 마냥 짙푸른 잎새로 때깔이 짙어져 가고 빛의 속도처럼 재빨리 움직이는 시간도 이렇듯 일상을 이유 없이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이다.
집에 도착한 후 핸드백을 던지듯 내려놓고 온 종일 주인을 기다리고 심부름해준 엔서링 머신은 빨간 눈을 껌뻑거리고있다.
가볍게 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귀 기울인다.
주인이 지시한 이후부터 하루종일 메모해 논 사람들을 전갈을 시녀처럼 중얼거리듯 토해내고 있다. 엔젤아씨 미주 문협 배 입니다. 한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유문학에서 봄호에 신인으로 당선이 됐답니다. 축하합니다.
시인이 됐다.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또한 인정된 시인이므로 조심스럽기까지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된 이 순간 기쁘기도 걱정되기도, 착잡하기도, 참말로 혼돈스럽다.
예전엔 시를 쓰고 좋아서 하는 취미였지만 이제는 시인으로 시를 만나는 시각이 달라져야 하는 부담감도 적지 않아 거북하기도 하다.
시를 시의 가치에 머무르는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를 바로 읽어야 하는 이유도 터득하여야 한다.
시를 만나는 순간에는 바쁜 생활 속에 밀려 지친 영혼을 밀애처럼 속삭여주는 은혜스런 대화로 녹슨 가슴을 닦고, 다듬고, 쓸어내서 세상으로부터 상처난 상흔을 달래준다.
여러 해를 모른 척 외면하고선 어쩌다 한번씩 생각날 때도 그래도 모르는 척 지나온 해후에 현실은 무질서 속에서 혼탁해진 무리 속에서 스스럼없이 함께 하고 있다.
오! 나의 영혼에, 그리고 나의 눈동자를 좋은 시선으로 마주 하고싶다. 나의 귀를 열어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내 입을 열어 말하는 입술은 보배로운 말만 한다면 얼마나 경이로울까.
시를 만나야 할 간절한 절박함이 심장은 이미 경고하고 있었건만 말이다.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의 천국이 보일 듯 말듯 고양된 격조 속에서 머문다. 그래기에 불길속에서 순금을 정화시키듯 부패된 마음을 다듬어 내는 일 이라고 자신은 이렇게 정의를 내리는가 보다 . 정직한 입술로 글을 엮여 함께 더불어 마음을 씻어내는 일이면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시를 사랑하는 이유를 비밀처럼 간직하고 살아온 오늘, 시인들이 나에게 시인이라 불러도 좋다는 이유가 여기 있었나.
시를 쓰는 작업은 굳어진 대지 위에 촉촉이 봄비로 내려와 마음을 부활시켜 봄을 새롭게 탄생 시켜주듯 혼탁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삽과 곡깽이로 심성을 다스리는 작업임이 틀림이 없나보다.
마음이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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