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밤 여배우 숙소서 숨죽인 채 사랑 나눠 고백
올해 여든 살을 맞은 코미디언 배삼룡씨가 유랑극단 시절 주연 여배우와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중앙일보에 회고록을 연재중인 배씨가 첫사랑이라고 고백한 인물은 지난 1972년 작고한 김화자씨. 배씨는 김씨에 대해 오똑한 콧날, 촉촉한 입술, 가느다란 허리에 검고 긴 생머리. 민협이 자랑하는 비극의 히로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민협은 배씨가 스무 살에 입단한 극단의 이름이다.
배씨는 공연 도중 콧등이 부러지는 사고를 입었는데 김씨가 첫 무대에선 누구나 다 그래요라고 말하며 약을 발라주었다면서 김화자의 손이 콧등에 닿았을 때의 따스함, 그 여운이 밤새 나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연 여배우였고 배씨는 사람 취급도 못 받은 연구생(수습배우)에 불과했다. 배씨의 말마따나 두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처럼 큰 지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배씨는 단체에서 끼니는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해요. 아니면 굶기가 예사거든요라면서 밥 사먹을 돈을 건네주던 김씨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으며 그 감동은 이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아직 배씨 혼자만의 것이었다.
어려운 경영사정으로 민협이 해산한 후 먹고 살 길을 찾아 기약없이 헤어진 두 사람은 춘천에서 새로 만들어진 악단에서 주연 남녀배우로 다시 만난다. 공연을 닷새 앞두고 노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면서 김씨가 서울에서 내려온 것.
’로미오와 줄리엣’ 풍의 신파극인 이 공연은 김씨와의 포옹 장면도 있었기 때문에 배씨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민협 시절 손이 닿지 않는 아득히 높은 곳에 있었던 김씨가 드디어 자신의 품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후 그는 민협 단장, 김화자씨 등과 함께 20명 규모의 악극단을 꾸려 ‘며느리 설움’ 풍의 악극을 준비한다. 두 달 간의 연습 후 경기도 평택에서 첫 공연을 올린 단원들은 다음 공연을 위해 경북 안동의 한 여인숙에 도착한다.
한밤 중에 옆방인 여자 숙소에서 자고 있던 김씨가 방문을 열었다. 남자 숙소가 방 디딜 틈도 없이 꽉 차 있어 마침 잘 곳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아니, 여기서 뭐해요? 그게, 잘 곳이 없어서…. 김씨가 배씨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이 방은 넓어요. 추워서 다들 옷을 껴입고 자니까 괜찮아요. 느닷없는 제의에 배씨는 쭈뼛쭈뼛했다. 상관없대도. 배씨랑 같이 있다고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김씨는 자신의 이불을 배씨에게 덮어 주었다. 걱정 말아요. 이불 같이 덮는다고 이상할 건 없으니까. 잠이나 푹 자요. 간혹 그녀의 입김이 배씨의 볼에 닿았다. 팔꿈치가 살짝 닿기도 했다. 배씨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당연히 잠이 올리 만무하다.
잠든 줄 알았던 김씨가 속삭였다. 배씨, 잠버릇이 나쁜가 봐. 배씨는 그 순간 김씨의 입술을 훔치고 꼬옥 끌어안았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왜 이래요?하면서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배씨는 추운 겨울밤, 숨을 죽인 채 김씨와 나눈 사랑이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밝혔다.
/한국아이닷컴 뉴스부 reporter@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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