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오석근 감독 전미선 주연 ‘연애’
남편은 늘 등 돌린 채 누워 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 여자는 액세서리에 촘촘히 가짜 보석을 박으며 남자와 전화한다.
영화는 무미건조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어진을 통해 ‘연애’의 단맛과 쓴맛을 표현했다. 아들 둘을 둔 유부녀 어진의 일탈은 사랑에 대한 갈구이자 현실도피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제작사인 싸이더스FNH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연애의 목적’을 잇는 ‘연애’ 시리즈의 완결판이라 소개하고 있다. 두 영화가 그러했듯 이 영화도 파격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풀어가는 방식은 격정적이었던 두 영화와 달리 담담하게 독백하듯 흘러간다.
91년 ‘네 멋대로 해라’, 93년 ‘101번째 프로포즈’를 감독한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사무국장으로서 임무에 충실했던 오석근 감독이 모처럼 현장으로 돌아와 제작한 작품. 오 감독은 영화의 배경지로 부산을 선택해 부산에 대한 애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영화는 배우 전미선을 우리 앞에 과감하게 소개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귀를 후벼주며 무심히 단서를 제공했던 장면은 긴박했던 영화 속에서 한 폭의 풍경화처럼 묘사됐다. 차승재 대표가 이 영화에서 전미선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한 후 그를 위한 ‘연애’ 제작에 착수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 빚에 쪼들리는 어진은 윤정이라는 이름으로 낯선 남자들의 무료함이나 성적 욕망을 달래주는 전화방 아르바이트와 액세서리를 완성하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아들에게 그토록 원하는 인라인스케이트도 사주지 못할 정도의 가난이 그를 답답하고 무료한 삶으로 내몬다. 그나마 두 아들이라도 있기에 버티는 것.
돈을 받기 위해 전화방 사무실로 간 자리에서 묘한 분위기의 김 여사(김지숙)를 만난다. 김 여사는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며 명함을 건네준다. 룸살롱에 가지 못하고 노래방에서 아줌마인 줄 알면서도 여자를 찾는 남자들을 위한 공급 업소를 하고 있다. 망설임 끝에 어진은 결정을 내리고, 어색한 화장을 한다.
2차를 나가기로 결정한 날 어진은 외제 자동차 딜러 민수(장현수)를 만난다. 민수는 달랐다. 어진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대했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 처음 하는 섹스이지만 경계심이 다소 사라진 상태에서 관계했다. 섹스 후 민수는 어진에게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자신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면서.
어진은 그런 민수가 싫지 않다. 처음엔 애써 거부하지만 민수를 차츰 받아들인다. 이처럼 민수에게 잊고 있었던 새로운 감정을 품기 시작했을 때, 아이를 못 낳는 집주인 젊은 여자는 어진의 두 아들 중 한 명을 자신이 키우겠다고 제안한다. 어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서.
현실에 있지 않을 것 같았던 행복은 잠시. 그가 의지한 김 여사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남편과 함께 자살하고, 민수는 머뭇거리며 어진에게 가슴이 쿵 무너져내릴 제안을 한다.
시종 위태롭다. 일탈이며, 불안한 회귀다. 어진의 선택에 공감이 가면서도 답답하다. 그래서 지켜보는 내내 보는 이의 가슴이 답답해진다.
적나라하지 않지만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포착하는 데 주력했으나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유발해낼지는 미지수.
12월9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