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해거름 무렵, 집 앞의 골프코스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또 그 녀석들을 만났다.
여덟이나 무리를 지어 나타났는데, 지금까지 내가 만난 녀석들 중에서는 제일 굼뜬 것 같다. 요즘 세도나 답지 않게 기온이 뚝 떨어져서 나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데, 녀석들은 두리번두리번 어슬렁어슬렁 만사태평 산책로를 횡단중이다.
녀석들에게 길을 비켜주는 동안, 나는 겅중겅중 제자리 뜀박질을 해야 했다.
이 녀석들이 그 유명한 세도나의 하발리나(javelina)다. 언뜻 보면 작은 집돼지나 멧돼지같이 생겼지만, 뿌리는 전혀 달라서 페커리(peccary)과에 속한다고 한다.
통통한 몸집에 짧은 다리,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에 큰 송곳니를 달고, 길고 뻣뻣한 털로 무장한 이놈들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른 아침이나 어스름한 저녁에 둘에서 많게는 스물까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이놈들은, 스컹크 못지않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코믹하고 친근한 생김새 때문에 세도나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레드락과 덤불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하발리나들은 2년 전에 세도나의 메인 스트릿으로 진출했다.
세도나 상공회의소와 세도나 아트 페스트벌의 공동 프로젝트인 ‘하발리나 퍼레이드’(Javelinas on Parade)로 부활한 것이다.
몸집이 큰 놈과 작은 놈을 한쌍으로 하여, 이름도 색깔도 제각각인 하발리나 조각을 세도나 시내의 레스토랑, 갤러리, 호텔 로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세도나 유일의 영화관인 하킨스 극장 로비에 가면 팝콘 더미 위에 올라서 있는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하발리나를 만날 수 있다.
핑크 지프 투어 앞에는 핑크빛 살결을 민망하게 드러낸 하발리나 한 쌍이 서 있다. 하나같이 코믹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하발리나 퍼레이드는 2006년 “애리조나의 보물”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들 하발리나는 2007년까지 시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가 경매에 부쳐 세도나의 예술인들을 후원하는 데 쓰여진다.
세도나는 아름다운 바위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인구 1만밖에 안되는 소도시지만,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뭘 하냐고 물어보면 열에 셋은 작가나 음악가나 화가라고 한다.
오지영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