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 국민회가 지난 1일로 창설 100주년을 맞았지만 대부분 한인들에게 국민회는 생소한 게 사실이다. 필자는 한인 이민사에 관심을 갖던 중 국민회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을 알게 되면 국민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초기 한인 이민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그분들을 향해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헤미트 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13년 6월25일이었다. 리버사이드 카운티 헤미트 지방의 영국 사람 시몬의 농장에서 살구를 따는 일꾼이 필요했었다. 한인 11명이 농장의 요청에 따라 기차 편으로 현장을 향했다. 그런데 그들이 역에 도착하자 역 광장에 수백명의 백인 노동자들이 모여 “우리는 동양인을 원하지 않으니 빨리 여기서 떠나라”며 한인들을 밀어제치고 시비를 걸어오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요즘으로 말하면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수적으로 크게 열세인 데다가 당시의 사회적인 여건이 백인들과 대항해서 싸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한인들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농장 주인이 차비를 보상해 주는 바람에 당시 한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별반 손해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다음 다음날인 27일에 어디서 어떻게 이 소식을 들었는지 LA 주재 일본 영사 누마누가 리버사이드까지 와서 이들 한인의 농장취업을 알선했던 최준성, 차정률씨를 찾아와 손해배상을 받아주겠다며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이에 두 사람은 일본 영사관이 한인을 일본인으로 취급하며 사건에 개입하는 것 자체에 격분, 면박을 주며 한 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그러나 사건은 오히려 더 커지기 시작했다. 워싱턴 DC의 일본 공사가 한인들을 자국민으로 간주하면서 미 국무부에 헤미트 사건은 미일 통상조약의 위반이라며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사건이 여기에 이르자 이번에는 대한인 국민회가 나섰다. 국민회는 그 지방 주민들과 타협, 해결한 후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국무장관에게 전문을 보냈다. “한인들이 헤미트 지방에 일하러 갔다가 주민들에게 축출을 당한 사건을 일본 영사가 간섭하려고 하나 우리는 이를 원치 않는다. 한인들은 대개 한일합방 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로 한일합방을 반대하며, 일본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터이니 재미 한인을 일인과 같이 대우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브라이언 장관은 국민회의 전문을 받은 뒤 7월2일 성명을 발표했다. “한인은 일인이 아니라는 대한인 국민회 총회장의 전보를 받았다. 그래서 재미 한인에게 관계되는 일은 공사나 사사를 물론하고 일본 정부나 일본 관리를 통하지 말고 한인사회에 교섭할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국무부의 이같은 유권해석은 한인들을 크게 고무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인들의 실질적인 위상 확립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즉 브라이언의 발표가 신문에 보도되자 관청과 민간에서 한인과 일인간의 분별을 공식화 하였고 대한인 국민회는 재미 한인 대표기관의 대우를 받았다.
이렇게 되자 당시 까다롭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이민국도 국무부의 이 같은 유권해석에 따라 중국 상해로부터 들어오는 한인 학생이나 사진결혼으로 들어오는 한인 신부는 여권이 없어도 국민회의 보증만 있으면 상륙할 수 있도록 특별 배려를 해주었던 것이다.
국민회가 대한제국의 영사관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며 따라서 대한제국은 망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명맥은 이역만리 미국에서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나철삼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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