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체 종사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윤리 기반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를 통해 돈을 맡긴 사람들을 저버리는 권력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 은행들은 사적인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우선해야 한다.” 지난 7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세계 성직자에게 보낸 ‘진실에 대한 사랑’이라는 제목의 회칙에서 자본주의의 일탈과 실패에 대해 이렇게 꾸짖었다. 1311년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 횡행하던 고리대금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로마교황청이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에 또 다시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중세시대 당시 피렌체 상인들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양모 무역을 통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들은 상품 교환수단으로서 화폐를 정착시켰고,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은행들을 세워 나갔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의 싹이 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돈으로 돈버는 고리대금업도 함께 발달시켰다.
HSBC 회장 “과도한 보너스 관행이 금융위기 불러”
로이즈뱅킹그룹도 성당서 자선 캐롤행사 등‘속죄’
21세기 전세계 자본시장은 피렌체 상인들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고도로 발달했다. 수학과 과학 등을 총동원해 슈퍼컴퓨터로도 풀기 힘든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을 개발했고, 자유 방임 속에서 실물 경제를 능가할 정도로 파생시장의 거래규모를 키웠다.
금융업체 종사자들은 수백 만 달러 돈방석에 앉았다. 오만해진 은행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미래의 위험은 무시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숙명처럼 모험 투자를 동반했고, 급속한 성장과 함께 파멸의 길도 재촉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의 3배가 넘는 돈이 한 순간에 증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리대금업에 심판을 내린 700년 전 중세시대 같이 외부의 강력한 단죄는 없었지만 자본주의 본질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인식은 월가와 쌍벽을 이루는 런던 금융가에서 두드러진다.
런던 ‘더 시티’를 관할하는 성공회 교구의 올리버 로스 목사는 “이달 들어 성당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부분 은행 종사자들인데, 은총을 받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이해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들과 대화하는 동안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윤리성을 되찾으려는 욕구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로이즈뱅킹그룹에 근무하는 수백 명이 최근 세인트 폴 성당에서 자선 캐롤 행사를 가졌다고 전했다. 행사를 기획한 캐논 길스 프레이저는 “참가자들에게서 (윤리적으로) 변화된 모습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몇은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과 이 문제를 얘기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로이즈뱅킹그룹은 대표적인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이번 캐롤 행사는 어떤 면에서 속죄의 성격을 갖고 있다. 로이즈뱅킹그룹은 과도한 리스크 투자를 일삼다 막대한 부실을 내고 영국 정부에 손을 벌린 대표적인 은행이다. 영국 정부로부터 2008년과 지난해 11월 두 차례에 걸쳐 205억파운드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정부가 지분 43%를 갖고 있다.
은행 고위층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국 최대 은행인 HSBC 회장인 스티븐 그린은 지난 7월 발간한 ‘선한 가치’라는 책에서 세계 금융의 역사를 정리하고 종교적 시각을 통해 금융위기를 분석해 전세계 금융인들에게 새로운 윤리코드를 제시했다. 그린 회장은 영국성공회 목사이기도 하다. 그린 회장은 단기성과에 매몰된 리스크 투자에 대해 비판했으며 그 원인으로 과도한 보너스 관행을 지적했다. 그는 “보너스가 성과에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지급된다. 직원이 은행과 계약을 체결하면, 무조건 보너스를 챙긴다. 이후에 손실이 생기더라도 보너스를 다시 회수할 장치도 없다”고 말했다.
바클레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틴 테일러는 최근 몇 년 사이 급등한 금융가 보너스가 마치 모래성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익의 50%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것이 금융권 관행이다. 실제 발생한 이익이 아니라 파생 상품의 미래 가치나 회계장부에서만 존재하는 이익을 바탕으로 보너스가 지급됐다. 결국에는 이익이 줄거나 손실이 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고 꼬집었다.
책임감과 윤리 의식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라자드 인터내셔널의 켄 코스타 회장은 “자본주의가 도덕적 자양분을 모두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매 은행들이 고객들의 예금을 갖고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일삼았다. 그러면서도 오만한 은행들은 고객들에게는 엄청난 수수료를 요구했고, 응대가 소홀했으며 잘못된 투자상품을 팔았다”고 지적했다.
도이체 방크의 CEO인 조셉 액커만은 책임감 부족을 지적한다. 그는 “위험 투자에 대한 윤리 의식이 책임감의 핵심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영란은행(BOE)의 전직 애널리스트인 앤디 브루커는 “은행들은 고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봉사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깡그리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금융가에서 반성과 회개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은 은행들이 금융 위기를 초래한 리스크 투자 와 과도한 보너스 습성을 버리지 못할 경우 또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번 위기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금융분야에서 불거졌다는 점에 은행들이 생존을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뉴욕 월가에 비해 런던 ‘더 시티’가 도덕적 성찰에 적극적인 것은 ‘더 시티’가 월가에 비해 타격이 더 컸던 점이 작용했다. 영국은 지난 80년대 대처 수상이 집권 이후 대대적인 개혁조치를 취하면서 한계점에 다다른 제조업을 버리고 대신 금융산업에 전 역량을 집중했다. 이로 인해 경제는 한 때 호황을 맞았지만 금융위기로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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