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금융불안, 왜 지속되나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부채에 허덕이는 황제를 설득해 지폐를 발행하게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고하노라. 이 종이는 1,000크로네에 해당한다. 나라 안에 무진장 묻혀 있는 보화를 담보로 충당하겠다”제국의 재정위기는 잠시 진정되지만, 근본적 처방이 없으므로 머지않아 보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자금조달 방식과 조건
불투명한 것도 불안감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표한 남유럽 재정위기의 해결책이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EU는 그리스에서 시작된 남유럽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이번 달에만 두 차례 발표했다. 먼저 유로화를 사용하는 회원국과 국제 통화기금(IMF)이 공동으로 그리스에 3년간 1,10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 그러자 다음에는 ‘충격과 공포’(shock & awe)라 불릴 정도의 추가대책을 발표했다. 유로 회원국과 IMF가 공동으로 7,500억유로라는 사상최대 규모의 자금을 조성하여 3년간 위기 발생국을 지원하겠다는 것. 이에 더해 유럽 중앙은행(ECB)도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시장은 잠깐 이를 반겼지만 환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유로화 가치는 4년여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고 주가와 국채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대규모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유럽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시장이 이번 지원 대책이 임시처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국 간 경쟁력 격차 해소, 항구적 재정 건전화 방안, 위기관리 체제 구축과 같이 유로체제의 본질적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없으니 앞으로 그리스와 같은 사태가 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령 재정긴축 방안들이 계획대로 실행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 경기가 과도하게 침체되면 재정사정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긴축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인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7,500억유로를 조성한다는 원칙 외에 구체적인 자금조달 방식이나 지원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것도 불안 요인이다. 유럽 상당수 국가들의 재정사정이 좋지 않아, 지원국과 수혜국을 구분하는 것조차 애매하다. 과연 이 기금을 모을 수 있을지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다.
ECB가 일반의 예상을 깨고 국채 매입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이는 오히려 ECB가 쌓아온 인플레이션 퇴치자로서의 명성에 흠집을 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슈피겔지는 이에 대해 “인플레이션 망령(specter of inflation)이 드디어 유럽에 출몰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독일이 독자적으로 헤지펀드의 투기적 거래를 규제하고 나서면서 시장불안이 증폭됐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서 시장불안을 일시에 잠재울 수 있을 정도의 구제금융 방안을 내놓고도 유럽이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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