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뙤약볕을 즐기듯 신나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창 너머에서 정겹게 들려오는 아침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텃밭에 물을 뿌려주고 있는데 널찍한 오이 넝쿨사이를 비집고 활짝 피어낸 샛노란 오이꽃 속에 머리를 처박은 꿀벌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올 봄엔 들깨를 심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떨어진 씨앗이 뒤늦게 발아해 이파리가 엄청 실하다. 키 자랑을 하듯 쑥쑥 커가는 부추, 풍성하게 작은 밭고랑을 가득 메운 싱그러운 푸른 상추, 짙은 보라색의 통통하게 살찐 가지, 풍성한 잎새 사이사이로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민 풋고추, 알알이 붉게 물들어가는 방울 토마토, 길쭉하고 검푸른 쥬키니 호박(돼지 호박)도 열렸다.
그뿐인가 수박모종을 한 그루 사다 심고 정말 제 구실을 할까 했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제법 수박 몸을 갖추었다. 온 몸에 줄을 긋고 주먹만한 열매가 두 개씩이나 열려 의젓하게 자리를 잡고 지금 한창 부피를 늘리고 있다.
가을이 풍성하다지만 우리집 텃밭은 여름이 제철이다. 풍성한 먹거리로 이웃과 나누는 것은 아직은 깻잎과 부추뿐이다. 이제 내년이면 점점 실력을 늘려 더 많은 것을 나누는 재미도 가지려고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특히나 초보자로서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진 이유가 있다. 지금 텃밭엔 수없이 많은 길쭉길쭉한 손가락같은 오이가 줄기를 타고 줄지어 열리고 있다. 푸른 잎새 넝쿨에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숨어서 말없이 살찌어 놓는 것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이른 아침 텃밭에 나가면 두 식구가 먹을 만한 싱싱한 오이와 풋고추를 따다 식탁에 올린다. 어떤 때는 갓 따온 푸른 상추와 깻잎 그리고 새콤달콤한 초장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때면 우리가 직접 농사지은 무공해 채소이기에 더 맛있다.
어떤 오이는 마음이 고은지 곱게 뻗은 놈도 있고, 어떤 오이는 고약하게 비뚤어진 놈도 있다. 오늘은 얼마나 컸는지 어떤 놈이 날 먹어 잡수셔 하는지 요리 살피고 저리 살피다 보면 미쳐 발견치 않아 늙어버린 오이들도 제법 있다. 오이는 내일쯤 따면 좋을 것이라 하면 그 다음 날은 누런색이 물들어 있는 것 보면 욕심 부리지 말고 일찍 따야겠다.
오이는 비바람이 불 때를 대비해 끈으로 잘 묶어줘야 하고 메마르지 않게 늘 물을 뿌려 주어야 한다. 해가 되는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풍족하고 실한 오이를 많이 수확할 수 있으리라. 오이 지지대는 대나무가 제격이다. 따로 줄을 쳐주지 않아도 대나무 가지를 타고 오이 넝쿨이 알아서 올라간다. 기르기가 다른 식물에 비해 다소 까다롭다지만 받침대를 만들고 물 관리만 잘하면 여름 내내 싱싱한 오이를 따먹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또한 잎채소 일색인 텃밭에 열매 채소인 오이를 심으니 일을 하다가 하나씩 따먹는 재미도 있고 아삭 아삭 시원한 맛은 꿀맛 같다. 그래서 자그마한 텃밭에 나가면 그날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확 풀리는 느낌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저 미소한 식물마다 각기 다른 유전자를 주셨음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알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과학적 사고와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좋은 계기를 갖게 되기도 한다.
텃밭의 녹색은 우리 마음을 안정시켜 주며, 자연의 소중함, 농부의 고마움, 그리고 나눔의 기쁨을 알게 해준다. 또한 무공해 농산물로 가족 건강을 지키는 운동효과 까지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텃밭에서 심은 대로 싹을 내고 기특하게 잘 커가는 녀석(?)들을 보면서, 흙을 만지며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작은 것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에 젖으며 흙처럼 거짓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남은 여생을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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