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케스트라 연주곡·영화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인기
▶ 악보에 음표 A, B, C, D로 표기 “작곡자 의도 뭐냐” 해석 갈려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절찬리에 공연 중인 댄스 뮤지컬‘파리의 미국인’의 한 장면.

진 켈리 주연의 1951년 영화‘파리의 미국인’의 한 장면.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이 작곡한 재즈 풍의 경쾌한 교향시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은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해온 미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LA 필하모닉도 자주 연주하고, 할리웃보울 프로그램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파리의 미국인’으로 유명한 작곡가 조지 거슈인.
그런데 최근 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 조짐이 일고 있다. 거슈윈이 1928년 작곡한 이 곡에는 당시로서는 평범하지 않은 악기 세트가 등장하는데 바로 프렌치 택시 호른(French taxi horns)이다. 이 타악기는 음악 군데군데에서 빰빰빰 하는 소리를 냄으로써 파리에 처음 가본 미국인들이 경험하는 도시의 소음을 표현하고 있다.
20세기초 모던음악이 나오던 시기에 몇몇 작곡가들은 새로운 악기를 사용하는 실험적 시도를 했었다. 미술에서 ‘발견된 오브제’가 사용됐던 것처럼 음악에서도 ‘발견된 도구’를 사용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에릭 사티의 1917년 발레음악 ‘퍼레이드’에서 타이프라이터와 총격 사운드가 사용되었고, 1927년 프레데릭 콘버스의 포드자동차에 부치는 작품(Flivver Ten Million)에서는 자동차 경적이 울리기도 했다. 거슈윈의 택시 호른도 이런 트렌드를 따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논쟁은 이 택시 호른이 지금까지 잘못된 음표로 연주돼왔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음악계에 폭탄선언과도 같은 이 주장은 미시건 대학에서 곧 나올 예정인 조지와 아이라 거슈윈 작품에 관한 비평연구에 실릴 예정이다. 이에 따르면 ‘파리의 미국인’을 연주하는 세계 각처의 오케스트라들은 물론이고, 진 켈리가 주연했던 1951년 클래식 영화로부터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절찬리에 주 8회 공연 중인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택시 호른 부분에서 거슈윈의 의도와는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음악인들은 물론이고 ‘파리의 미국인’에 맞춰서 특별 제작된 택시 호른의 악기제조자, 판매자, 대여업자들이 모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프렌치 택시 호른. <사진 kolberg.com>
‘파리의 미국인’ 문제의 발단은 거슈윈이 손으로 쓴 오리지널 악보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보면 박자는 확실하게 호른이 한 세트의 강조된 8분 음표를 연주하도록 명기돼있다. 그런데 음표에서는 다소 명확하지가 않다. 악보에는 4회의 택시 호른 연주부분에 각각 동그라미 표시한 A, B, C, D가 써있다. 그동안은 이 동그라미 쳐진 글자가 각 호른이 연주해야할 음표라고 해석돼왔다. 즉 A(라), B(시), C(도), B(레) 음을 연주하는 것이 1945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NBC 심포니 녹음 연주 이후 정설로 굳어져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비평 에디션은 거슈윈이 동그라미 친 알파벳 글자들은 음표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호른이 연주할 것인지를 표시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시건 대학의 마크 클레이그 음악학 부교수에 따르면 거슈윈은 1928년 파리 여행에서 자신이 택시 호른을 직접 골라서 사왔고, 친구들과 동료들의 회고를 들어보아도 거슈윈은 각 호른이 무슨 음을 내야할 지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클레이그 교수는 그 증거로 1929년 거슈인의 감독 하에 녹음된 빅터 레코딩의 ‘파리의 미국인’을 제시한다. 분명히 바로 그 택시 호른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녹음에서 오케스트라는 A. B, C, D가 아니라 A플랫(내림라), B플랫(내림시), 높은 D(레), 그리고 낮은 A(라)를 연주하고 있다. 그 결과 음악의 분위기는 미묘하지만 확실하게 다른 톤을 띄고 있다.
거슈윈이 사용했던 오리지널 호른은 현재 찾을 수가 없다. 아이라 거슈윈의 조카인 마이클 스트런스키(81)은 1928년 조지 거슈인이 유럽에서 돌아와서 가족들을 위한 비공식 리사이틀을 열었을 때 자기 아버지가 바로 그 택시 호른을 연주했다고 말한다. 훗날 그는 그 호른을 찾으러 다닌 적이 있는데 많은 이사와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버렸다고 전했다.
시카고 타악기 대여전문업체의 러스 넛슨은 ‘파리의 미국인’에 맞춰서 음을 조정해놓은 호른을 렌트해주면서 때에 따라서는 자신이 직접 연주하기도 한다. 그는 현재의 A, B, C, D 음표가 악보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 주장한다. “미국 전체와 전 세계가 그 4개의 음표에 맞춰 연주해왔고, 모든 레코딩을 들어봐도 바로 그 네 음표의 소리뿐”이니 그게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퍼쿠셔니스트로서 그 호른 파트를 40~50회나 연주했고, 자신이 캘리포니아 타악기 렌탈 회사를 운영하며 악기도 대여하고 있는 트레이 와이어트는 이 새로운 주장에 대해 강한 흥미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음표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면 아마 다른 택시 호른 세트를 5세트쯤 더 사야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절찬리에 공연중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파리의 미국인’에서 음악 각색과 감독을 맡고 있는 로브 피셔는 A, B, C, D가 음표가 아닌 호른 이름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빅터 레코딩에서 사용된 음표를 오리지널로 수용할 지에 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거슈윈이 각 호른이 정확히 어떤 음을 냈으면 좋겠다고 원했다면 그걸 왜 악보에 써넣지 않았겠냐는 지적이다.
미시건 대학의 클레이그 교수에 의하면 거슈인이 감독했던 1929년 녹음과 지금의 연주기준을 확립한 토스카니니의 1945년 녹음 사이에는 대단한 변주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자신의 음악적 분석으로는 1929년 빅터 레코딩에서 사용된 음표가 가장 잘 맞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지는 택시 호른을 단지 음향효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화음과 멜로디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한 그는 “조지가 만일 A, B, C, D가 아니라 숫자로 1, 2, 3, 4라고 표시했더라면 이런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뉴욕타임스 본사 특약>
<사진 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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