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식주의자’ 번역…맨부커상 수상 뒤 첫 방한 기자회견
▶ “한국문학 세계화 가능성 매우 크다…노벨상 집착은 당황스러워”
“해외에서 ‘채식주의자’의 치밀한 구조와 강렬한 이미지, 시적인 문장에 주목하며 한강을 세계에서 가장 재능있는(talented) 작가 중 하나로 인정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채식주의자’를 영문으로 옮겨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한강과 공동 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는 15일(한국시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면서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맨부커상을 받은지 한 달 만에 한국문학번역원의 초청으로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한국어도 할 줄 알지만, 이날은 편한 모국어인 영어로 말했다.
그는 먼저 “내가 번역가가 된 것은 부와 명예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라며 “놀라운 소설 기법상의 성취이자 방대한 인문학적 예술작품으로 내게 다가온 '채식주의자'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영국에서 많은 작가와 독자들이 한강의 다른 작품을 읽을 날을 고대하고 있으며, 한국 소설에 새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 “엄청나게 감동받았다”며 “이미지가 매우 강렬했고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각자 다른 화자 3명의 목소리로 구성된 연작소설 형식인데, 영국에 이런 연작소설 개념이 없어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또 “이 작품은 어떤 애틋함과 공포의 이미지를 함께 다루는데, 한 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작품 내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아주 절제된 문체가 인상적인데, 그게 무심하거나 차갑게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항상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려고 한다. 다른 번역가와 마찬가지로 원작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번역가가 원작을 보강하는 역할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며 “부실한 번역은 우수한 작품을 망칠 수 있지만,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이라도 보잘 것 없는 작품을 명작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수상으로 문학 번역이 작품을 창조적으로 다시 쓰는 작업임을 널리 인정받게 돼 기쁘다”면서도 “번역은 겸손한 작업이다. 상을 받았다고 내가 한국문학이나 번역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은 주관적인 것이고 원작자인 한강은 물론, 출판사 편집자, 에이전트 등이 없었으면 이런 성취가 불가능했다”며 몸을 낮췄다.
또 “내 ‘채식주의자’ 번역은 완벽하지 않고 내 한국어 실력은 그 이후 더 좋아졌지만, 번역 당시 오류가 있었다 해도 독자의 읽는 즐거움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고무적이다”라고 했다.
그는 번역에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최대한 존중하려 애쓴다며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 만화를 ‘코리안 망가’ 식으로 다른 문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쓰는 데 반대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번역에도 ‘형’이나 ‘언니’ 같은 단어를 그대로 썼다. 이렇게 계속 소개하다 보면 스시나 요가처럼 영국인들이 한국 문화에도 익숙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해 번역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노벨상에 대한 이런 집착(obsession)이 약간 당황스럽다”며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잘 감상하고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겐 충분한 보상이 된다. 상은 그저 상일 뿐이다”라고 못박았다.
이어 한국문학의 매력과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에 다양한 작가와 작품이 있기 때문에 매력을 하나로 얘기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 번역 출간된 작품이 많지 않은데 이제 번역이 늘고 있어 앞으로 많이 알려질 것이다. 문학은 원래 확산 속도가 느리지만, 앞으로 한국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답했다.
스미스는 국내에서 2007년 출간된 ‘채식주의자’를 근 10년 만에 해외에 알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한국과 전혀 인연이 없던 그는 영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문학을 번역의 ‘틈새시장’으로 여겨 2010년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3년 만에 ‘채식주의자’ 번역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어를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었던 비결로 “내가 언어 습득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지는 모르겠고, 한국문학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습득을 빨리 했다. 좋은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답했다.
그는 ‘채식주의자’ 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안도현의 ‘연어’를 번역했으며, 배수아의 소설 2편을 번역해 각각 올 10월과 내년 초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으로 ‘미국 문학 번역가 협회’의 연례회의에 배수아 작가와 함께 참석해 미국 뉴욕 등지에서 낭독 행사도 연다.
또 얼마 전 영국에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에 특화한 비영리 목적의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를 설립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연간 최소 한 권 이상 한국 소설을 번역 출판하기로 했다. 올해 10월 황정은 소설을, 내년엔 한유주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작품 선택 기준으로 “문체와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정보 전달 이상으로 뭔가 더 흥미로운 것을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문장이 있는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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