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다른 때보다 더 빨리 다가오는 것 같다. 추석은 음력으로 8월 15일이지만 양력으로는 추석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어렸을 때 어른들께서 입춘이니, 단오니, 초복이니 말복이니 동지니 하시며 계절을 셈하는 것을 들으며 자라왔다. 양력에 익숙했던 때라 그렇게 그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옛날 농사를 짓던 시기에는 봄철과 여름철 사계절을 분명히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음력이었다. 농사의 철을 잘 알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면 그 해 농사는 실패하고 만다.
2월이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그때가 아직 단오가 아니라면 절대로 모를 심으면 안된다. 만일 날씨가 따뜻하다고 모를 심으면 그 해 벼농사는 망치게 된다. 그래서 농사를 할 때는 반드시 철을 알아야 한다. 이 철을 모르는 사람들을 ‘철부지’라고 했다. 때를 모르고, 시간을 모르고, 계절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사촌형님은 좀 특이한 분이셨다. 여름에도 겨울에 입는 검은 코트를 입고 다니셨다. 땀이 나는 여름에 더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는 사람마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 형님은 그런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파묻혀 그렇게 여름철도, 겨울철도 그 옷만 걸치고 다니셨다. 내가 아무리 편하다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그것 또한 철부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물론 자유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은 자기의 선택이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가끔씩 아이들이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볼 때 ‘언제 철이 드느냐?’ 라든지, ‘철부지 같은 아이’라고 한다. 사람이 철이 든다는 것은 곧 시간을 알고, 때를 알 때이다. 아이는 아이의 행동을 해야 하고, 어른은 어른의 행동을 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의 때에 맞추지 못할 때 철이 없게 된다. 비록 어린 아이가 장가들어 가정을 이루게 될 때에 이 아이는 한 여인의 남편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아내에게나 부모에게 어린아이의 투정을 부릴 때 그것을 철부지라고 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인생은 철을 알고, 때를 아는 것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 한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사랑할 때는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소유할 때는 최선을 다해 소유하고, 그러나 쉴 때는 쉬고,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는 내려오고, 놓을 때는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죽을 때가 오면 조용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음정이고, 박자이다. 음정과 박자가 제대로 맞을 때 듣는 사람의 귀가 편안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이 드는 것이다. 이 철을 놓치면 철부지가 되고 만다. 나의 인생의 노래는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음정, 박자가 다 틀리면서도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있다고 하는 철부지 인생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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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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