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물 구분하고 기억력 뛰어난 까마귀
▶ 40가지 소리로 소통, 도구 이용해 먹이 먹기도

일본 우츠노미야대학교 연구실에서 사육 중인 까마귀가 2004년 8월 상자 속의 먹이를 먹기 위해 부리로 리본을 풀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는 까마귀와 관련된 속담이 많습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고 밤에 까마귀가 울면 나쁜 일이 있다.” 잠깐 생각해 봐도 여러 개가 떠오르는데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네요. 이처럼 까마귀는 우리에게 ‘흉조(凶鳥)’로 여겨졌습니다. 같은 까마귀과 조류인 까치는 ‘길조(吉鳥)’로 여겨졌으니 까마귀의 신세가 참 불쌍하죠. 처음부터 사람들이 까마귀를 싫어하고 흉조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그건 아닐겁니다. 십 년 전쯤인가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벌써 눈치 채신 분이 있을 텐데요. 바로 ‘삼족오(三足烏ㆍ발이 세 개인 상상의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자 태양의 상징입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자주 등장을 하고 추앙 받은 것을 보면 지금 까마귀들이 처하고 있는 상황과는 아주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흉조라는 인식이 박힌 까마귀는 한 때는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면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까마귀의 수난시대였죠.
■우는 소리까지 가르치는 까마귀
까마귀 새끼는 알을 깬지 한 달 뒤 둥지를 나와 가족들과 함께 지냅니다. 아기 까마귀는 입안이 붉은 색이며 눈은 회색에 검은 눈동자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입안은 검어지고 눈도 검어지죠.
아기 까마귀는 부모의 3분의 2 크기까지 커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잘 먹고 잘 자라서 몸은 금방 커지는데 아직 날지는 못하죠. 덩치 큰 아기 새가 애교를 떨면서 먹이를 먹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기 까마귀는 다른 종의 아기 새들과 달리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람이 자기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듯 부모 새는 아기 새에게 나는 법, 우는 법 등을 가르칩니다.
어미 까마귀는 새끼를 애지중지 키웁니다. 봄이 되면 까마귀가 길 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발로 차거나 부리로 찍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어김없이 머리 위에 둥지가 있을 겁니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퇴치하기 위해서죠. 둥지 근처로 가지 않아도 눈만 마주치면 와서 달려들고,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까마귀에게 찍혀버린 거죠.
둥지나 나무에서 떨어진 아기 까마귀를 주워서 키우면 부모에게 돌아갈 기회가 사라지게 되죠. 그러면 부모로부터 살면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기회까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까마귀들은 몸이 자라서 어떻게든 날지만 다른 무리들과 함께 잘 어울리지 못하고 우는 소리도 달라서 소심한 까마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까마귀는 조직 안의 서열과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말이죠.
■까마귀의 기억력은 상상 이상
제가 일본의 한 대학교에서 큰부리까마귀를 연구하던 시절, 연구실의 터줏대감은 날개를 다쳐서 들어온 ‘낫짱’이라는 13살 된 까마귀였습니다. 어느날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하려고 사육장으로 들어갔더니 낫짱이 어디서 끈을 물고 와서 놀자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미안, 나 오늘 바빠서 같이 못 놀아줘. 저리 가서 혼자 놀아” 라며 손으로 밀쳐버리고 말았죠.
다음 날, 사육장에 들어가자마자 낫짱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제 발을 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날카로운 부리로 들이대는 낫짱을 피하면서 사나흘간 사육장에 발도 못들인 기억이 있네요. 그 착한 까마귀가 같이 놀아주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복수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까마귀는 ‘기억’과 ‘인지’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사람이나 주변 사물을 얼마나 잘 구분해 내고, 학습한 것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까요.
먼저 사람을 남녀로 구분하여 인지하는지, 사람의 눈, 코, 입을 각각 가리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을 해 봤습니다. 특정 사람의 얼굴사진을 붙인 상자에 먹이를 넣고, 다른 상자에는 먹이를 안 넣는 식으로 ‘먹이 보상’ 훈련을 했습니다.
이후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 주면 그 중 상자에 붙어 있는 사람의 사진을 부리로 꼭꼭 찍으며 골라냅니다.
놀랍게도 남자와 여자를 인지하고 구별해 냈으며 코와 입을 가렸을 때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봤습니다. 눈을 가렸을 경우에만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더군요.
■생활에서도 머리 쓰는 똑똑한 새
까마귀는 단순히 상대방을 잘 알아보고 기억력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소리로 대화를 하기도 하고 먹이를 먹을 때를 보면 ‘이 녀석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머리를 잘 씁니다.
어휘력이 풍부한 까마귀는 40여 가지의 소리로 소통을 합니다. 사람 귀에는 ‘까악-까악’ 하는 소리로만 들리지만 직접 까마귀 무리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뒤 분석해보면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까마귀는 이처럼 다양한 어휘들로 경계, 위협, 구애, 둥지 출입 등을 표현해 소통을 합니다. 대신 화려한 털 색깔을 자랑하거나 구애의 춤을 출 필요는 없죠. 까마귀는 말로 소통하면 되니까요.
까마귀가 호두 먹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딱딱한 호두를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에 던져놓고 자동차 바퀴에 깔려 깨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가 파란불이 들어오면 횡단보도를 건너 도로 위의 호두를 주워 먹죠. 상자에 먹이를 넣고 리본으로 묶어 놓으면 까마귀는 부리로 리본을 풀고 상자 속의 먹이를 꺼내 먹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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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옥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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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까마귀는 신기한 생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