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인천북성성결교회 신석우 목사
▶ 예산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교회방문, 긍정적·활동적·창조적인 성품으로 개척교회부흥…이민온 후에도 양로병원 및 노인 섬김사역에 매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목회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세 교회를 개척하고 세 자녀를 모두 목회자로 이끈 고 신석우 목사는“항상 타오르는 열정과 소외받은 이웃들에 대한 동정으로 가는 곳마다 부흥의 역사를 일으켰다”고 유가족 측은 회고했다.
“부친은 충청남도 예산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목회와는 거리가 정말 먼 환경에서 성장하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세 교회를 개척하고 세 자녀를 모두 목회자로 이끈 행운아였습니다”
지난 1일 81세의 나이에 LA에서 별세한 고 신석우(사진) 목사의 차남 신현호 목사(새하늘 커뮤니티교회 담임)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동적이며 창조적인 성격의 인품을 지니셨던 분이라 미국에 이민와서도 양로병원과 노인 섬김사역에 매진했다”고 회고했다.
고 신석우 목사는 1939년 6월10일 충남 고덕면 구만리에서 부친 신월남씨와 모친 전금매씨의 5남3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신석우 목사의 부친은 목수 일을 했는데 형제들 가운데 총명한 셋째 아들을 가장 사랑했으며 한학을 많이 배우게 했다고 한다. 신목사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20대 초반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가정이 평안한 모습을 보고 누가 전도를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구만리 성결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제발로 찾아간 교회생활은 너무 재미가 있었고 인격적인 교제가 좋았으며 목사님과 교회 리더를 보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너무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했기 때문에 당시 황성주 목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늦은 나이에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게 됐다.
신목사는 1964년 9월10일 예산에서 한난숙씨와 결혼했다. 결혼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미모의 한난숙씨를 아내로 얻기 위한 동네 청년들의 경쟁이 치열했는데 군생활 및 사회생활, 교회활동 등에서 신목사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 자세에 오히려 장모가 그 모습을 더욱 좋아해서 적극 허락했다고 한다.
1973년 신학생 시절에 첫 목회지인 김포성결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1976년 폐쇄직전의 검단성결교회(현 검단우리교회)에 자원하여 부임하게 되었다. 재직중 새 성전을 봉헌하게 되었고 등록성도 500여명의 교회로 부흥하게 된다. 1988년에는 인천서지방회 지방회장을 역임하고 1992년 4월16일 인천북성성결교회에 부임하여 8년 동안 시무하게 됐다. 이 기간에도 새 성전을 봉헌하고 교회 부지를 마련하는 등 부흥을 주도했으며 등록성도 1,000여명의 교회로 성장시켰다. 신석우 목사의 차남 신현호 목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부친의 생활 자세와 열정으로 인해 개척하는 교회마다 부흥이 일어났고 특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동정심이 강해 많은 이들을 전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1980년에는 전국 및 해외교회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은퇴까지 500여회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어려운 환경을 살아왔기 때문에 늘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을 흘렸고 그래서 그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격려하며 기도한 것이 부흥의 비결이었다. 개척했던 교회의 성도들도 그 긍정의 격려를 잊지 못했으며 남들은 다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해도 신목사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고 한다. 2000년에 자녀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온 후에도 양로병원 및 노인 섬김사역에 매진했다.
전공이 부흥사이다 보니 미주 양로원 사역 최초로 순회 부흥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도움선교회를 통해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시니어케어센터와 LA 미드윌셔 헬스케어센터, 효사랑선교회의 시니어대학 등에서 강연했다. 장남 신현모 목사 등 3형제를 목회자로 키워 ‘한마음봉사회’에서 ‘장한 어버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남 신현모 목사는 서울신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 미국에 유학와 탈봇신학교,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목회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주총회 남서부지방회장, 남가주교역자회장을 지냈다. 또한 이민자목회자 네트워크 대표, 남가주지역 다민족기도대회 총무, 오렌지카운티 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 미주기독교총연합회 이민신학위원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전주바울교회의 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차남 신현호 목사는 새하늘 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로 시무중이며 장녀 신혜영씨도 권성은 목사(주님반석교회)의 사모로 봉사하고 있다.
“부친은 성품이 불도저같고 불같기에 무엇이든지 하면 대충하지 못하고 생명을 걸고 하는 분이셨다”고 회고한 신현호 목사는 “그분은 육신이 썩어 없어지는 것을 원치않고 닳아 없어지거나 불타서 없어지는 촛불같기를 원하셨다”고 말했다.
신석우 목사는 지난 10월1일 추석에 가족들이 나들이를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산보를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 날과 현재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 후 잠들 듯이 눈을 감았다고 한다. 고 신석우 목사의 유가족으로 부인 한난숙씨와 장남 현모, 차남 현호, 장녀 혜영씨 등 2남1녀, 3명의 손자, 3명의 손녀가 있다.
추모사- 장손녀 그레이스저희 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사람이셨어요. 제가 10대였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어요. 주일 아침마다 할아버지와 같이 양로원에 가서 거기에 계신 어르신분들을 예배실로 모셔다드렸어요. 거기에서 저희 할아버지는 설교를 하셨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항상 저희 할아버지가 빛이 난다고 느꼈어요.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실 때는 항상 카리스마가 넘치셨고 할아버지의 말에는 대단한 호소력이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전달하는 말씀으로 거기에 계신 어르신분들이 감동을 받고 희망을 얻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 또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항상 저도 주변 사람들께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저는 나중에 제가 결혼할 때를 상상해볼 때마다 항상 식장에 제가 할아버지 팔짱을 끼고 걸어들어가는걸 상상해왔는데...
어딜가든 모든 자리에서 환한 미소와 호탕한(?) 웃음소리로 존재감을 들어내시며 밝게 빛나던 할아버지. 천국에서 언제나 늘 저를 지켜보고 계실거라고 믿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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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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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많이 세운것이~~자랑할일인지~?~.ㅈㅎㅇ교인들만의 세확장.계모임 확대....
CEO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