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은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찬란한 봄이지만,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무겁다. 한 달 넘게 골칫거리였던 길가의 얼음이 된 눈더미는 따스한 햇살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졌건만, 인류가 자초한 전쟁과 경제의 엄동설한은 갈수록 기세를 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전운은 중동으로 번졌고,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은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에너지 공급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물류는 마비되었고, 치솟는 물가는 서민의 삶을 짓누른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내부에서 들려오는 심각한 경고의 신호음이다. 2026 회계연도 기준, 미국 부채의 순이자 지출이 1조 39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국방비조차 넘어서는 수치다.
19세기 경제학자 아담 퍼거슨의 이론을 가지고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프랑스 브르봉 왕조, 오스만 제국, 대영제국과 같은 강대국의 몰락을 증명하면서 '퍼거슨 임계점(Ferguson Limit)' 이론을 제시했다.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가 국방비를 앞지르는 순간 제국은 몰락한다는 가설에 미국이 이미 도달한 것이다.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내부의 반이민 정책은 노동 시장의 근간을 흔들며 스스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지금의 미국은 불과 몇 년 전 우리가 알던 그 나라가 아니다. 불안의 파고는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도 들이닥쳤다.
한때 기회의 땅이었던 이곳에서 이제는 추방의 공포를 피해, 혹은 불투명한 미래를 피해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역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책은 갈피를 못 잡고, 동맹은 약화되며, 세계인들이 선망하던 '아메리칸 드림'의 빛은 바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나고 자란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여전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불안에 잠겨 뒷걸음질만 치기에는, 그들이 짊어질 미래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난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번영할 것인가를 묻는 근본적인 시험대다.
미국이 환골탈태하여 다시 일어서든, 혹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 변모하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결집'이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미주 한인들은 파편화된 개인을 넘어 강력한 운명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첫째, 시민권 취득을 독려하고, 전문직 양성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경제적 자생력을 키워 실질적인 생존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둘째, 흩어진 표심을 모아 우리의 권익을 대변할 정치적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혼란기일수록 집단지성을 발휘할 세미나와 공부의 장을 끊임없이 열어 집단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셋째, 서로가 서로를 돕는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하여, 거센 풍랑 속에서도 침몰하지 않는 방파제를 우리 스스로 만드는, 상호 부조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마당의 매화는 영하의 추위를 견뎠기에 그 향기가 더욱 그윽하다. 지금 우리가 겪는 전쟁과 경제 위기, 사회적 갈등 또한 언젠가는 따뜻한 봄날 검은 눈무지가 사라지는 것처럼 녹아 사라질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봄은 기회가 된다. 우리가 스스로를 단련하고 커뮤니티의 중심을 바로 세운다면, 변화된 미국 사회에서도 우리는 당당한 주류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시련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포에 질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고 내일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반드시 우리만의 봄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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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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