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이름을 떨친 황제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고개가 숙여지는 성군이 아니라 이맛살이 찌그러지게 하는 ‘문제아’의 이름도 이어진다. 아우구스투스가 힘겹게 세워놓은 로마 제정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고 갉아먹은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그들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권력자도 자칫하면 자신의 이름에 ‘몹쓸 인간’이라는 별칭이 붙어 다니는 것을 저승에서 한탄하는 신세가 된다.
힘깨나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잘못 남기면 대대로 욕을 먹는다. ‘김희X 1981.’ 새크라멘토에서 동남쪽으로 약 40마일 떨어진 ‘캘리포니아 동굴’에 새겨져 있는 여자 이름과 이름을 새긴 연도다. 최근 가족과 함께 이 동굴을 구경갔던 한 한인은 “이름 석자는 모두 또렷하게 남아 있었고 글자도 큼지막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인지 미주 한인인지 알 수 없지만 이름을 쓴 연도를 보면 동굴을 발견한 개척자 그룹에 속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동굴 안내인이 벽에 새겨진 동굴 발견자들의 이름에 대해 얘기할 때 한국이름을 집지 않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미국인들이 한글을 모르는 게 불행 중 다행일지 모르지만, 이 여성이 자연을 훼손해 코리안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이 한인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남긴 이름은 오명일 뿐”이라며 혀를 찼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물건도 ‘이름 팔기’에 신중하다. 미국의 대표적 컴퓨터 회사인 휴렛패커드는 저가형 프린터 시장 장악을 노렸으나 자사 브랜드의 품격을 고려해 ‘아폴로’라는 새로운 계열사를 설립한 뒤 여기에서 값싼 프린터를 생산할 만큼 ‘이름 값’에 신경을 썼다. 그러니 사람이 이름 내기에 장고를 거듭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인회장 선거를 약 5개월 앞두고 여러 명이 후보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아무개가 출마한다더라 하는 소문이 금방 퍼졌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 나섰겠지만 잘못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으로 분류될 수 있다.
부끄러운 과거행적을 쉬쉬하면서 한인사회의 진정한 봉사자가 되겠다고 떠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근거 없는 인신공격이나 음해로 경쟁자들을 누르려한다면 당선되더라도 ‘추한 이름’이 따라다닐 뿐이다. 선거 후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소송을 한답시고 법원에 몰려다니면 한인사회를 떼로 망신시킨 장본인들로 그 이름이 남을 것이다.
이름 한번 광내려다, 되레 커뮤니티를 어지럽힌 인물로 추락할 수 있음을 잘 새겨야 한다. 한인사회는 매명에 혈안이 돼 있는 소인배가 아니라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인물을 원하고 있다. 후보들이 언행에 조신해야 하는 까닭이다.
<박봉현 미주본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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