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람차별은 심각하다. 미국서 귀국한 10여 세 소년의 모습이 검다는 이유로 얼굴에 침을 뱉는 수모를 당했다. 최근 그 소년이 미식축구 영웅으로 서울을 20년만에 방문하여 국빈대접을 받는 경사가 있었다.
개천서 용이 났다고, 청와대는 정찬에 선물까지 주었다. 최우수선수(MVP) 하인스 워드(30)는 서울서 “(돌이켜보면) 창피했던 것은 혼혈이 아니라 차별이었다”, “나는 한국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사랑에는 색깔이 없다”는 말들을 남겼다. 어머니 김영희 여사는 “(친정) 엄마는 흑인 손자 사진을 서랍 속에 숨겼죠”라고 고백했다. 아들에게는 “겸손해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인간의 우열 잣대를 출신성분이나 얼굴 색깔에 둘 수 있을까? 유학시절(1964)에 만난 한국인 친구는 캠퍼스서 일본인 행세를 해왔다. 그의 고백(?)은 대접을 받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했다. 한국계 흑인학생은 재정지원과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멕시코에서 온 한인자손과 하와이에서 온 한인계 혼혈인 들도 자신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실토했다.
사실 한국의 혼혈인들은 불행하게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왔다. 기지촌의 그들을 ‘아이노꼬’나 ‘튀기’ 등으로 불러왔으며, 학교문도 닫혔고, 직장 기회도 제한됐으며, 병역의 의무도 없었다. 이런 차별은 외국인에 대해서도 극심했다. 심지어 일본인을 쪽바리, 왜놈, 게다짝으로, 중국인은 뙤놈, 왕서방으로, 서양인은 코쟁이나 빨간 엉덩이로 비아냥했다. 그들은 천박한 오랑캐로 냉대를 받았다. 쇄국정책과 주자학의 유교정신이 인종차별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반만년 역사의 단군 자손이라는 홍익인간의 정체성은 문화정신에 높은 비중을 두었지 DNA로 입증할 수 있는 혈통주의는 아닌 듯 싶다. 한반도의 정착은 고증학과 인류학에 의하면 북방의 발을 탄 사람들의 이주와 배타고 상륙한 남방사람들의 이동을 처음부터 왜곡 해석해왔다. 마침내 유교적 전통은 사람차별에서 여자 신분을 노예로, 외국인은 오랑캐, 왕과 신하, 노인과 어린이 등을 종적 관계로 규정지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남’으로 배타적이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능력이 근거가 불분명한 출신신분에 의해 무시를 당했던 것이다.
하인스의 방한으로 정부는 서둘러 ‘혼혈인’(Mixed-blood)을 잘못된 말이니 ‘결혼이민자 자녀’로 용어 변경을 제안했다. 법무부는 외국인과 자녀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고 인종차별 금지법을 추진할 것을 공표했다.
해외동포 500만 명에 달하는 가정마다 외국인 사위나 며느리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300여 만 명의 해외 입양자녀들도 현지 외국인들과 결혼을 하고 있다. 국내서도 신혼부부 3쌍 중 1쌍은 필리핀,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 일본 등지에서 배우자를 초청해 이뤄지고 있다. 순수혈통주의는 아집에 가깝다. 단일민족의 기준을 어느 DNA에 맞출 수 있을까. 한반도는 단군이래 수천 번의 전쟁과 정복으로 말과 여자를 조공물로 교류해왔다. 국경도 없는 인터넷 시대에 한국은 지구촌의 한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언어, 음악, 종교, 산업, 무역, 교육, 과학 등에서 고유성만으로는 역부족인 현실이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불법(1968)인 것을 명심하자. ‘단일민족의 우수성’은 겸손과 인내일 것이다. 백인에게 겁탈을 당하고도 묵과하면서 흑인친구를 소개할 때는 ‘너 죽고 나 죽자’고 피를 토하는 절규가 이율배반이지 않은가. 사랑의 본색은 색맹이어야 하고 ‘색깔’이 아니다. 우리의 착각은 편견과 멸시, 그리고 냉대에 숨겨져 있다. 처음부터 ‘잘못 잠근 단추’의 비극을 반성해보자. 한민족을 문화인으로 믿어주는 이웃이 있으니 ‘나’의 태도부터 바로잡아 가는 양반들이 되자.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가 아니던가.
김현길 /지리학 박사.연방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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