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요란한 기관총 소리가 멎었다. 야포 소리도 멀어져 갔다. 초여름 저녁 몸까지 스며드는 소낙비가 안개를 남기고 그쳤다. 멀리서 인민군들이 초토화된 아군진지를 수색하는 듯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 일병의 몸이 떨려 왔다. 왼손으로 존 중위의 입을 막고 있는 손에도 경련이 왔다. 제발 그놈의 영어로 아프다고 “Help”라고 외치지만 말아다오. 개성이 멀지 않은 깊은 산악지대에 존 중대가 인민군 여단에 포위된 지 엿새만에 완전히 박살이 나고 존 중위의 통역관으로 따라 나선 박 일병 둘만이 구사일생 살아남은 것이다. 존 중위는 오른쪽 다리에 가벼운 총상을 입고 있었지만 박 일병이 잘 지혈을 시켜 피가 멈췄다. 몰핀을 주어서 통증도 가라앉았지만, 둘은 닷새를 수통의 물과 건빵 조각으로 때웠으니 허기로 인해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었다.
박 일병은 존 중위를 업어서 큰바위 아래 눕혔다. 바위는 대낮의 햇볕으로 따뜻했다. 축축이 젖은 몸을 바위에 대고 말리며 밤을 지내는 것이다. 어두운 새벽에 남쪽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다. 자기의 M1은 묻었다. 존의 칼빈은 개머리판을 떼었다. 배낭도 담요와 약재를 빼고 버렸다. 존이 코를 골고 자는 동안 박은 눈을 뜬 채로 잤다.
새벽은 유난히 맑고 차가웠다. 새벽 별들이 또렷이 보였다. 존이 파란 눈을 떴다. 미안한 듯 존은 피식 웃었다. 존은 나침반을 꺼내서 남쪽을 가리켰다. 어두움 속에서도 광활한 들판은 환하게 보였다. 박은 머리를 저었다. 동쪽 산악을 턱으로 가리켰다. 존도 끄덕였다. 박은 존이 대견스러웠다. 그의 다리에 감긴 흰 붕대가 빨간 피로 또렷하게 번지고 있었다.
박은 밭처럼 보이는 들로 내려갔다. 땅속을 뒤졌다. 작은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올라왔다. 존은 고맙다고 손경례를 하고 손으로 흙을 닦고 소리를 내며 먹어댔다. 박은 칡뿌리를 씹었다. 허기가 가셨다. 둘은 옷을 뒤집었다. 민방위처럼 보였다.
존의 흰 얼굴은 벌써 검은 수염과 포연에 검어져 있었다. 그는 발을 끌면서 박이 건넨 지팡이를 거절했다. 동쪽 산은 험했다. 밀고 끌고 환하기 전에 산을 타야 한다.
낮에는 동굴 속에서 지내고 반에는 산을 탔다. 인민군 수색대와 조우했다. 탄창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칼빈과 45구경 권총으로 상대할 수 없다. 코앞에까지 닥친 수색대도 운이 좋은 이들을 지나쳤다. 칡뿌리 산열매와 약수로 2주만에 둘은 원주 북방 도로에 내려왔다. 미군 수송대가 지나갔다. 존은 웃옷을 벗어 흔들었다.
존은 미국으로 돌아가 미네소타에서 공장을 경영하고 박을 미국에 초청했다. 박은 공학을 공부하고 유수한 회사에서 40여 년을 일하다 버지니아에서 은퇴하여 노인들을 위한 봉사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수년 전 존의 가족으로부터 소포가 왔다. 존의 편지가 은성 무공훈장과 함께 있었다. 존은 “이 훈장은 자네가 받아야 했으므로 자네에게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박 선생은 지금 미 6.25 참전용사 위안회를 준비중이다. 선생은 존 중위의 은인이기에 앞서 이 세상에서 맺어진 가장 아름다운 친구라는 생각 때문에 지금도 그와의 우정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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