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이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다 간사하다. 남편과 처음 떨어질 때에는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하여서 가슴을 졸이며 시작한 미국 생활이지만 살다보니 이제는 혼자라는 것이 편안하고 쉼을 느낄 때도 있을 만큼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남편이 올 때가 되면 손꼽아 기다려지고 더디 가는 날짜에 갑갑한 마음으로 달력만 자꾸 바라본다. 그리고 남편이 오는 날은 딸과 나는 흥분과 반가움으로 공항엘 간다.
남편이 있는 동안 나는 잠깐 공주로 변한다. 딸과 둘이 있을 때는, 딸이 갑자기“꺅~~엄마, 벌레....”라고 소리 지르면 휴지를 둘둘 말아서 잽싸게 달려가서 용감 무쌍하게 벌레를 잡는다. 그러나 남편이 있을 때에 내가 벌레를 보면 딸보다 훨씬 더 크게 “~~여보....벌레.....”라고 소리 지르고, 남편이 와서 벌레를 잡아준다.
혼자 있을 때는 큰 대못을 칠 일이 있어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커다란 망치로 꽝꽝 박고, 문도 고장이 나면 고치고 문손잡이가 망가져도 남부를 일없이 내 손이면 다 해결된다. 홀로서기가 잘 되어있는 나는 집안에서만큼은 남자 할일 여자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다 해결한다.
하지만 남편이 있는 동안은 작은 못을 하나 박는 일도 못(?)한다. 그러한 점은 역시 남편이 있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남편이 와서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마음은 바뀐다. 딸과 둘이 있으면 적당히 먹고 바쁘고 피곤하면 햄버거 하나로 때우기도 하지만 남편이 있으면 그것이 어렵다.
가능한 상을 그득히 차려야 하니 끼니마다 보통 일은 넘는다. 남편이 있으면 하여간 매일 피곤하다. 그런데다 남편이 오고 나면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가야할 곳도 어찌 그리 많이도 생기는지. 골프를 즐기는 남편을 위해 전혀 취미 없는 골프장 출입도 자주 해야 하고,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저곳 갈 때면 운전을 해야 하고.
그러나 막상 남편이 떠날 날이 내일로 다가오면 다시 마음은 허전하여지고 가슴은 답답하여진다. 또 나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구나 하고. 일년에 두 번씩 많은 횟수를 거듭하였는데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항상 바로 그 전날에는 아침에 눈이 뜨면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내일이면 간다네, 내 곁을 떠난다네, 잡지 못할 사람이기에 나는 어떻게......”
거의 자동으로 남편이 떠날 바로 전날은 잠자리에서 눈이 떠지면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가 음악을 틀어주듯이 정확하게 나의 뇌리에서 시작하여 나의 입으로 내려온다
남편이 떠나는 공항에서, 그리고 보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눈물이 범벅이 된다. 집에 와서는 더욱 허전하다. 특히 식탁에 앉을 때는 그 허전함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오늘,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등을 보고는 나도 몰래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였다. 똑똑하고 눈치 빠른 딸이 갑자기 수다가 늘기를 시작한다. 내가 잠시라도 슬픔을 생각할 시간을 주지를 않으려고. 단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릴 시간을 주지를 않는다. 덕분에 눈에 고인 눈물이 고이다 말고 그냥 말라버렸다.
이영숙/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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