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며 생각하며
▶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더니 말복, 입추가 지나고나니 더위가 한풀 꺾인 아침, 저녁으로 서늘함이 정말 살맛나는 계절이 돌아온것 같다.
뒤뜰 나무숲속에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오후 한때다. 난 고추를 따러 자그마한 텃밭에 나왔다. 그리 넓지 않은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소꿉장난과 같은 화초 가꾸기 정도의 자그마한 규모의 텃밭이다.
어느 날 야외 피크닉을 마치고 시골 동네로 오는데 각종 모종을 잔뜩 내다 놓고 파는 가정집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은 모종을 벌써 심었다는데, 이미 늦었지만 서둘러 심어보자는 바쁜 마음에 차를 세우고 둘러보다 토마토, 고추 모종을 몇 그루 사왔다. 밭 농사는 찬찬한 남편 몫인데 하고 현관 앞 잘 보이는 곳에 말없이 모종들을 놓아두었다.
다음 날 부지런하게도 남편이 어느 틈에 텃밭에 가지런히 심어놓고는 물뿌리개로 시원스레 물을 뿌려주고 있다. 또한 토마토, 고추 줄기가 곧게 올라가라고 받침대까지 설치해 놓았다. 얼마 전엔 후배네 집에서 부추를 몇 뿌리 뽑아와 심어놓았더니 제법 부추의 모양새를 갖추며 파랗게 소복소복 하늘을 향해 올라오고있는 게 아닌가. 정말 희망이 보인다. 난 토마토, 고추 모가 얼마나 자랐나 매일 아침 텃밭에 나가 들여다보는 재미에 푹 빠지고, 덩달아 신난 듯 토마토와 고추 모들은 어느 새 쬐끄만 꽃망울을 줄줄이 터트리기 시작한다. 매일 물뿌리개로 물을 주면서 “토마토야, 고추야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무럭무럭 자라 바람에 쓰러지지 말고 굳세게 많은 열매를 맺는 거야. 마실 오는 토끼가 있으면 빨리 말해야 돼, 절대 안 된다고 알겠지…”
어느 새 꽃 밑둥에 좁쌀 같은 작은 열매가 맺히는 것이 얼마나 신통한지 .어쩌면 하나님은 저 미소한 식물에도 유전자를 주어 하나, 둘, 셋 열매를 맺게 하는지 감사가 절로 난다. 이제는 제법 주먹만한 여러 개의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리고, 꽈리고추는 심심풀이 땅콩같이 매끼마다 둘이 먹을 만큼은 실하게 열려준다.
신통한 것은 토마토가 한꺼번에 빨갛게 익는 것이 아니고 하나 둘씩 따먹기 좋게 서서히 익어주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그런데 자그마한 텃밭에 무슨 영양분이 있다고 잡초까지도 한 몫 하겠단다. 잡초를 뽑아내다 보면 온통 땀 범벅이가 된다. 성경에도 말하지만, 탈무드에도 하나님이 아담에게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내용이 있다. 기분 좋게 흘리는 땀은 삶의 기쁨 그 자체이며 이때의 땀방울은 가장 아름다운 짭짤한 보석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며 땀 운운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말이겠지만 텃밭을 가꾸면서 나는 온갖 정성을 들여 농사짓는 농부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됐고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은 진정한 짭짤한 보석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생계를 위한 절대적인 노력이며 희망일 테니 말이다.
저렇게 정겹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얼마후면 사그러들 것이고, 그 때쯤이면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 속에서 가을도 문턱을 넘고 있겠지. 이제 뒤늦게 텃밭의 즐거움을 만끽한 난, 내년 봄엔 좀 더 폭을 넓혀 오이,가지,호박 모종도 틀림없이 텃밭에 가지런히 심어보리라.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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