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한국 방송 중 요즘은 ‘사랑과 야망’이라는 프로가 방영되면 열심히 본다. 젊은 시절에 ‘추송웅’이라는 연극배우가 있었는데 내가 꽤나 좋아했었다. 그런데 ‘추상미’란 그의 딸이 이 프로에 출연하는데 부전여전(?)이랄까 얼굴도 다식판에 찍은 것처럼 닮았고, 아버지 못지않게 명연기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TV 드라마를 보면서 여주인공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내가 어느 프로에서 봤느냐고 집사람에게 물으니 생글거리며 웃기만 한다. 그 대답을 찾느라고 유심히 보니 옛날 프랑스 여배우 ‘잔느 모로’처럼 입이 아니 몸 전체가 촉촉하다 랄까 농염한 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기를 몇 주 하다가 결국 내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니까 “여보, 당신 장길산이란 연속극에서 보았잖아. 한고은!”하고 소리를 친다. “앗차, 참 그런 것 내가 몇번 본적이 있지”라고 답답한 것 무엇 하나 해결된 기분이 좋다.
그러다가 어제 무슨 TV 연속극에 그 주인공이 나온 것 같아 “여보 그 여자 이 프로에도 나오네” 했더니 “여보 한고은 닮은 것 근처도 오지 않았는데 참 당신 사람얼굴 그리도 못 알아보니 참… 당신 마누라 얼굴이나 알고 있는지” 하면서 깔깔 웃는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 보니, 그 배우가 아닌 것 같아 좀 계면스러워진다. 여배우, 탤런트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성형미인들이라는 이유로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 그랬었던가… 아니다… 이제 여자에게 흥미를 못가질만큼 늙어서 그럴까… 그것도 아니다. 나는 천성적으로 사람 얼굴 알아보는 눈설미가 없다. 20대의 나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20대 후반, 섬유수출의 최전방에 엘리트라고 까불면서(?) 명동, 소공동을 휘젓고 다니던 중, 술 한잔 하고 기분이 한창 좋게 걷고 있는데 명동에서 모 외환은행 소공동 지점 외환계의 여행원과 마주쳤다.
당시 외환계 여행원들은 일류대학 출신 미녀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여행원은 참으로 미녀였다. 불문곡직하고, 손목을 꼭 잡고, 맥주집에 끌고 가서 앉히고 수작을 걸었다. 그런데 어찌 이야기가 자꾸 ‘핀트’가 안 맞았다. ‘엇박자’라고나 할까… 그러다 하나하나 대화중 그 내용의 베일을 벗기니 아차 여행원이 아니라, 갓 결혼한 나의 친구의 부인이었다.
얼마동안 내 친구 와이프들이 나만 보면 웃으면서 “나 여행원 아니에요”하고 놀려대는데, 정말 부끄러운 곤욕을 치루었다.
내가 왜 이런 장광설을 늘어 놓느냐 하면, 요사이 집사람 따라 모 교회 수요 성경공부를 다녔다. 그런데 처음 찾는 교회인지라, 교회 재직자들이 환영인사 하는 분도 있고,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회, 나의 비즈니스 관계, 이것저것 섞여서 인사를 하는 분도 있고 하는데, 누가 누군지 몰라봐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아주 곤혹스럽다. 그 사람이 그 사람같고 어디서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주 헷갈린다.
더군다나 어떤 작가가 여자는 재치는 있으나 사려 깊지 못하다(sensible but thoughtless)라고 쓴 것 같은데 나는 좀 잘난 척 해서 말하자면 ‘thoughtful but senseless’라고 할까.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면, 적당히 상냥하게 재치있게 인사라도 나누어야 할진데, 바로 그 재치가 없어 머뭇머뭇하고 만다.
그래서 더욱 더 헤어지고 나면, 아 그 분이 그 분이었구나, 좀 친절히 아는 척이나 할 것을.. 하는 후회도 생긴다.
“나 본래 그런 사람입니다. 인사성이 없게 보이더라도 내 진심이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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