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철이가 방문을 나설 때 아빠는 식당에서 신문을 보고 계셨다. 철이가 씨리얼에 우유를 부을 때까지 아빠는 입을 열지 않으셨다. 철이는 짐작이 갔다. 어제 밤, 병석에 누워있는 엄마 곁에서 아빠가 화가 나셔서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아빠를 위로하시는 것을 철은 들었다. 아빠, 용서하구려, 얼마나 그 집이 어려웠으면 그랬겠우. 용서해요. 실인즉 아빠의 가게 앞에 박씨네가 얼마 전서부터 똑같은 컨비니언 스토어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철은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데이빗 박은 둘도 없는 친구인데, 그의 부모님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초기 암으로 수술까지 받은 이때. 철은 더욱 마음이 무거워져왔다. 그렇지, 주일학교에서 배운 대로 나도 친구네를 용서해야지. 그래, 엄마가 병에서 빨리 회복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마음을 고쳐 잡고 철은 학교에 닿을 때까지 내내 기도를 했다.
학교 정문에서 고급승용차에서 금방 내린 데이빗이 반갑다고 손을 흔들었다.
데이빗은 신나서 야, 우리 아빠가 너의 가게 옆에 새 가게를 여신댄다. 철은 입을 다물었다. 데이빗은 홈룸시간에 열심히 철이의 숙제를 베꼈다. 철은 창문 밖을 내다봤다. 청명한 가을 하늘은 그림처럼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지, 세상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친구마저도.
집에는 아빠의 포드 트럭이 정차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이 시간에 아빠가! 흥분한 채로 집안을 맴돌고 있었다. 철은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는 수술 후 통증도 있을 텐데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며 철아, 새것을 많이 배웠어? 물으시며, 아빠를 위로해 드려라 하시며 조용히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다. 시청에서 트집을 잡아서 아빠 가게를 철거하라는 지시가 났다고 했다. 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나님도 너무하시지.
일년 반 동안 철이네 집은 엉망이 되었다. 식탁에는 라면이 수시로 올랐다. 개스비가 없어서 아빠의 트럭은 집 마당에 언제고 서있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점점 나아가셨고, 화장실 안에서 울며 기도하시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아빠는 낮에 주무시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 부엌에는 소주병과 맥주깡통이 점점 줄을 서고 있었다. 철은 열심히 한글과 영어로 된 성경을 읽었다. 또 기도했다. 도와주세요 하나님.
엄마는 열심히 전화와 사업체 매매광고에 매달리셨다. 하루는 노인 한 분이 가게를 파신다고 와보라는 전화가 왔다. 부모님은 철이를 데리고 나섰다. 먼 곳이었지만 교통과 자리가 철이가 보기에도 너무 좋았다. 아빠가 혼자 들어가셨다. 잠시 후 나오시는 모습이 그게 아니다 라는 표정이셨다. 엄마가 아빠에게 물으셨다. 아빠는 힘없이 No 라고 대답하셨다. 엄마는 운전대에서 일어나셨다. 때마침 할아버지가 차 곁으로 오셨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대뜸 알아 보셨다. 오 미세스 김 어쩐 일이요? 아, 그랬구나. 당신이 병원에선 참 고마웠오. 나를 위해 그렇게 기도하고 도움을 준 병원 동기가 아니오. 고맙소, 내가 그렇지 않아도 당신을 찾았오. 오, 당신네가 내 가게를 맡아주시오. 개스 스테이션과 스토어예요. 장사는 괜찮소.
철은 하늘을 쳐다봤다. 아, 저 높고 높은 푸른 하늘이여.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