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공연 소개 등 음악인생 집중 조명
뉴욕타임스가 은퇴 기념 전국 순회공연에 나선 ‘록의 대부’ 신중현(66)씨의 인생을 집중 조명했다.
뉴욕타임스는 4일 ‘한국 록의 대부 돌아오다’라는 제목의 대구발 국제면 기사를 통해 한국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재키 신’으로 출발한 그가 은퇴공연을 통해 기나긴 음악인생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뉴욕타임스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한국 록의 대부
돌아오다’ 제하의 신중현씨 기사.
신중현씨가 미국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지난 7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에 이어 두번째다. 국내 아티스트가 미국 유력일간지에 잇달아 소개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로, 한국 록음악의 선구자로 살아온 그의 음악인생에 대한 미국 언론의 찬사인 셈이다.
전쟁과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새로워진 한국사회가 그를 당황케 하고 다소 실망시키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 속에서 그와 그의 음악이 재발견되고 있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대구 공연 전후 신씨의 심정과 함께, 화려하지만 힘들었던 그의 음악 인생을 전했다.
이 신문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모를 잃고 어렵게 생활했던 신씨의 10대 시절, 기타를 처음 접하게 된 사연, 미군부대에서 공연하던 시절의 에피소드, 미8군 최초의 여성 드럼연주자이자 부인이 된 명정강씨와의 만남, 가수 데뷔와 전성기 때 찾아온 불운 등에 대해 소개했다.
비틀스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신씨가 전성기를 열어가던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 찬양곡을 만들라는 지시를 어긴 뒤 마약소지 혐의로 복역하고 그의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고초를 겪었다면서 박 대통령 서거 후에는 디스코 열풍에 밀려 잊혀진 존재가 되기도 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또 그의 음악이 재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로 후배 가수들의 헌정앨범이 발표되면서 그의 음악이 재평가받고 있지만 그의 잃어버린 시간은 경제적인 면을 포함해 그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신씨가 미군부대에서 공연하던 시절 영어 액센트를 잘 흉내내 영어를 아주 잘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다며, 그는 같은 세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젊은 세대의 반미정서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음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신씨와 그의 음악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여전하다면서 그 역시 대구공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기타를 연주하고 히트곡을 열창했으며 대형 화면에 비친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고 전했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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