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바람이 나뭇잎을 떨구고, 뒹굴던 나뭇잎을 어디론가 몰아가는 가을이 깊어갑니다. 그때도 그랬었죠, 선생님과 마지막 뵌 케네디센터에서 돌의자에 앉으셔서, 그렇게 미소를 지으시고 반갑다고 으레 하시는 손짓으로 저에게 돌의자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몸이 심하게 안 좋으신데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기 몸보다 더 아끼시는 선생님께서 친구의 딸 추모음악회는 쓰러지더라도 참석해야 했으리라는 생각을 읽고 사실 저는 눈물이 핑 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영면하셨죠.
선생님께서는 장안의 소문난 가정에서 태어나시고 또 이름난 학교를 다니셨으면서도 항시 저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해학적이고 서민적인 이야기로, 늘 높은 자리를 마다하시는 겸손의 미덕을 담고 계셨죠. 사실은 늘 말썽꾼으로 명성을 날리셨던 것이죠. 7남매 중 둘째로 서울 궁정동에서 태어나셨으니, 가문과 전통에 어지간히도 반항하셨음이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선생님께서 신문사 회장님을 감동시켜 언론인의 길을 가시게 됨은 비상하는 날개를 달으심이나 마찬가지지요,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기자 생활은 선생님을 한국현대사의 인명록을 머리 속에 지니시고, 또 예리한 문학평론가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제가 뵈올 때마다 즐겨듣던 한국정치사는 대학 강단에서 들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뭐니 해도 선생님의 전성기는 파리 특파원 시절일 것이겠습니다. 월남 종전 파리회담을 기록하심으로써 세계사의 중심에도 계셨던 것입니다.
아깝게도 미국에 이민 오셔서, 언론을 떠나시고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심으로 해박하셨던 지식을 감추셨던 일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늘 말씀하셨듯이 신문사 윤전기사들을 측은히 생각하셔서 야근 때는 음료수나 과일을 들고 활자를 뽑는 일을 손수 도우셨다는 일화도 남기시고 있으니 그런 정이 그리웠던 것일까요.
그렇게 가시기 힘든 교회에 나가시면서 느지막이 서리집사를 받는데 얼마나 힘드셨는지 그 무용담은 지금도 머리 속에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제일 인기 있는 명사로 떠오르시며, 슬그머니 믿음을 견고히 다지시며, 오랜 교회생활을 한 저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뵐 때마다 갖게 하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을 가리켜, 화해시키는 사람, 박식하고 재치있는 설구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 붙임성이 좋은 사람, 창조적인 별명을 짓는 사람, 충실한 조언자… 이것으로도 선생님을 다 설명하기란 역부족입니다.
선생님이 가신지 겨우 한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선생님을 기림은 너무도
큰 것입니다. 이 시대에 어떻게 선생님 같은 분을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어느덧 냉랭하고, 마음을 열고 뒷사람을 가르치고, 격려하지 않습니다. 웃음대신 비웃음과 험담이 앞서갑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여전히 업신여깁니다. 지식인은 지혜로운 사용을 거부하고 교만해집니다. 외로운 사람을 웃겨줄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선생님은 저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시고, 가진 것이 없어도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기셨습니다. 지금도 언뜻언뜻 선생님께서 곁에 오셔서 저의 귀에 대고 자네 할 수 있어, 하실 것 갔습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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