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높은 빌딩의 그림자가 깔린 보도를 형태는 걸었다. 바닷바람이 겨드랑이가 시러울 정도로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형태는 셀폰을 켰다. 계속해서 신호가 가다가 끊어졌다. 그는 화가 치밀어 셀폰을 바다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걸었다.
상하이에서 심양으로 가는 기차는 대만원이었다. 며칠째 끼니를 거른 형태에게는 앞좌석에 앉은 아이가 먹는 빵을 피해 얼굴을 돌렸다. 항시 그가 역겨워 하던 중국사람들에게서 나는 기름냄새가 지금은 차라리 구수하게 느껴졌다. 그는 허기 때문에 온 몸이 비뜰려오는 것 같았다. 창밖을 바라봤다. 빌딩숲을 빠져나온 기차가 넓은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언뜻 그의 얼굴이 창에 반사되었다. 깊숙이 꺼져있는 눈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병자 같은 얼굴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자기 집의 푸짐한 갈비찜이 떠올랐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형태는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왔다. 남동생은 3살이었고, 부모님은 대전에서 이름난 음식점을 하다가, 두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킨다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북버지니아로 이민 오셨다. 아버지는 집근처에 조그마한 음식점을 비싸게 인수하셨다. 그리고 음식점을 금새 장안의 명소로 만드셨다.
형태는 어려서부터 갈비 냄새에 딱 질색을 했다. 그는 버릇없이 자기 식당에
코를 막고 드나들었다. 반대로 동생은 갈비를 주어다가 지나가는 개를 위해 먹이곤 했다. 아버지는 나무라시지 않고, 형태가 자라서 음식점 아닌 다른 직업을 갖게 하기위해 형태가 식당에 오면 심부름을 시켜 은행일을 부러 맡기셨다.
형태네 갈비집은 지점을 낼 정도로 번창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세 동생까지
매달려도 경영에 힘이 들 정도였다. 형태는 은행 거래를 하면서 저축되어가는 많은 재산을 보며, 대학졸업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자신은 사업을 하겠다고 미리 자기 몫의 유산을, 상속세를 덜기위해서도 지금 나눠 주십사고 청했다.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셔서 엄청난 현금을 그의 계좌에 입금시키셨다. 동생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고1학년 여동생까지도 캐시어로 열심히 일했다.
형태는 친구의 알선으로 상하이에 무역업소를 열었다. 그는 사업을 위해 중국 당국 공무원을 대접하기 위해 수없이 연회를 열었다. 유흥가에선 미국서 온 재벌가의 아들로 대접받았다. 중국인 영업소장은 형태 몰래 자금을 인사 청탁 자금으로 쓴다고 빼돌렸다. 형태는 매일 같이 술에 만취됐고, 잠은 유흥가의 호텔방에서 지새웠다. 미국에 수입된 물품들이 빈번이 불량품으로 창고에 누적되어갔다. 자금이 바닥나는 것을 알아차린 소장은 불현듯 잠적해버렸다. 여러 곳에서 자금압박이 시작된 것을 형태가 알 때는 너무 늦었다. 형태는 손을 털었다.
심양에 계신 아버지 친구 선교사는 형태를 보고 반갑게 맞았다. 작은 단칸
방이지만 따뜻했다. 떡만두와 칠면조 고기를 손수 구워오셨다. 형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가슴속에 따뜻이 고여왔다. 마음속에서, 벌을 받아야지 라고.
덜레스공항은 추수감사절 휴가 인파로 빈틈이 없었다. 형태는 머리를 들지
못하고 열리는 출구로 나갔다. 갑자기 형태야, 형, 오빠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형태는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그를 덥석 안았다. 동생들이 매달렸다.
형태는 목이 탔다. 가냘픈 소리로, 아버지 미안해요…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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