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작년 이맘때쯤 한국에 갔을 때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는 세 딸을 가진 어머니가 서울 큰 딸집에 계시다가 다른 지역에 사는 막내딸이 아기를 낳기 전 몇 년 만 집에 오셔서 도와달라고 해 그곳에 가서 큰 사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쓴 것이었다.
경수아범 보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인데, 이리 훌쩍 떠나오면서 자네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떠나온 것이 후회가 되네.
자네는 나한테 아들이고 기둥이라네. 오래 전 자네가 우리 집에 결혼하고 싶다고 큰 애와 인사 왔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처음 자네 인상은 작은 키에 작은 얼굴, 거기다 튀어나와 보이는 입, 그리고 안경까지 끼고 있는 자네 모습을 보고, 내가 생각한 사위의 모습이 아니라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네. 그때는 내 딸이 선택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러나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님을 반평생을 살고 나서야 느끼니, 나이 먹는 것으로 인생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네.
장인의 오랜 병고로 결국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집을 팔아야했을 때, 자네는 딸에게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장모님과 처제 둘은 우리와 함께 살 것이라고 얘기했던 말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네. 지난 10년을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이 없이 거기다 내 딸 미경이는 워낙 성격이 툭툭 내뱉는 성격이니, 자네가 얼마나 속을 끓였을까 새삼 생각이 드네.
자네는 장가오던 그날이나 10년이 더 지난 지금이나 항상 한결같은 모습으로 대해주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네. 없는 살림에도 처제들 둘 대학 졸업하도록 도와주고, 시집까지 보냈으니, 자네를 볼 때면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네. 이제 우리 셋이 조용히 살려나 생각했는데, 막내딸이 또 부르니 인생이란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닌가보네.
그리고 내가 떠나오던 날 자네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이렇게 얘기했지. 이 나이 되도록 내 집 한 칸 없는 장모를 생각해서 “어머니, 돈 생기는 대로 이제는 작은집이라도 사서 어머님 이름이 적힌 문패를 꼭 달아 드릴께요”라고.
딸년들이 엄마 생각하는지는 알지만, 애 키워달라고 부려먹으면서도 한 번도 내게 그런 말 해준 자식이 없어서 그랬었나, 자네 말에 그만 주책없이 눈물을 쏟았다네. 자네 때문에 내가 행복한 노인이 된 것 같네.
가끔 내게 용돈 주는 것, 엄마 아껴준다고 내 딸도 고마워하네.
부부의 사랑이란 상대방뿐만 이니라, 가족까지도 걱정하고 사랑하는 것임을 자네를 보면서 배운다네. 그래서 그런지, 여기 와서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자네 생각부터 난다네. 철부지 내 딸년 항상 아껴주어서 고맙고, 이렇게라도 고마운 마음 전할 수 있어 다행이네. 항상 건강하기 바라네. 장모가.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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