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틈새도 없이 허겁지겁 앞만 보고 달려와 보니 벌써 한해의 막바지 시점인 12월 문턱에서 발을 내딛고 있어 어느덧 중순에서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세월이 빨라서인지, 인생이 유한해서인지 또는 남은 햇수가 점점 줄어서인지, 어쨌든 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은 것만은 사실인 것을 인정하고 싶다.
나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무언가 헛되이는 살지 않았나 요모조모 따져 봐도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가정이면 가정, 사회면 사회, 국가면 국가 그 무엇 하나 보람 있는 일을 해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학구에도 충실치 못하고 길에서 서성거리다가 덧없는 세월만 보내진 것 같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집안을 매끄럽게 잘 이끌어가지도 못했고,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사랑을 듬뿍 주지도 못하고 그저 무조건 잔소리만 내뱉었으니 지금 생각해보아도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너털웃음만이 나를 민망하게 할뿐이다.
금년 초에 찬란한 꿈을 안고 멋진 청사진을 설계해서 12개월을 한 조각 한 조각씩 나누어 그 안에다 정성스럽게 계획한 것을 집어넣고 날이 갈수록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달력을 넘기면서 희망찬 포부를 기대해 왔지만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은 딸아이를 마음씨 착하고, 능력 있고 양가부모한테 효도하는 사람에게 시집보낸 것 이외는 조금씩 엇갈리게 되어져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포근한 사랑, 아들딸에게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따스한 사랑을 마음껏 줄려고 했던 마음의 사랑탑, 남에게 넓은 도량으로 베풀 수 있는 넉넉함, 좋은 이웃이 되게 노력하는 것, 대인관계를 보다 적극적이고 원만하게 유지시킨다는 일, 교회예배에 잘 참석하고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계획들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 자신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지 안할 수 없다. 참으로 12월은 나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뉘우침에서 오는 반성, 자아를 다시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에, 쓸데없는 고집, 과도한 욕심 그리고 나만의 질투심 등을 다 내려놓고 부드러운 남자, 아니 진실된 거인이 되고자하는 마음, 또한 내가 소속되어있는 문인회 모임에도 참석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히려고 하는 사고를 갖게 만든 12월. 뭇 사람들은 한해가 저물어가니, 한번쯤은 만남의 기회를 갖고 선후배 사이를 돈독하게 하면서 살아온 세상이야기를 추억과 함께 나눠 갖는 것도 참 의의가 있을 것이며, 어떤 모임, 회, 모모단체 제각기 그런 기회를 만들어 보다 나은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로 한해를 뜻있게 보내고자 분투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미국에 와서 중, 고, 대학, 대학원 동창회 연말 모임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변명 같지만 미국생활에 익숙해지려고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니 그 공백 기간이 11년이 흘러버렸다. 이젠 어느 정도 안정도 됐고 기반도 튼튼히 나름대로 쌓았다고 생각이 미치니 다음해부터는 무슨 모임에도 참석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마음이다.
전에는 인생은 40부터라고 했으나 요즈음에는 의술도 발달하고 생활수준도 높아져서 건강하고 젊게 사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인생은 60부터라고들 말하고 있어 듣기에도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늘 젊게 산다는 마음으로, 올해에 계획한대로 안됐다고 슬퍼하지 않고 이것을 계기로 12월에서 다음해로 넘어가기 전에 알찬 그리고 현실성 있는 계획을 구상 하려고 한다. 진솔되고 참신한 수필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홍병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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