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티첼로에 있는 토마스 제퍼슨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미국 독립선언문과 버지니아 주 종교자유법의 저자이며 버지니아 대학교의 아버지인 토마스 제퍼슨이 여기 묻혀있다.” 그가 (독립 이전) 버지니아 주지사, 그 이후 주불 공사, 국무장관, 부통령, 그리고 제3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대신 만인의 심금을 울리기에 족한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All men are created equal)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포함한 빼앗겨질 수 없는 권리들을 부여받았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독립선언문의 저자임을 그 자신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 할까. 제퍼슨의 사상과 행실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제퍼슨만이 아니라 그 당시 지도자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우선 ‘모든 사람’(All men)이라는 개념에는 흑인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또 (백인)여자들도 포함되지 않았음은 여성의 투표권과 참정권이 1920년에 헌법 부칙 20조 채택 이후에야 주어졌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1776년 독립선언문 당시의 모든 사람이란 백인남자들만을 의미했고, 재산, 특히 땅의 소유자들이 주로 투표권이나 참정권을 누렸었다.
흑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사고 팔 수 있는 재산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 여러 명이 노예 소유주들이었기에 독립선언문에서 흑인의 인간대우를 언급하는 구절을 놓고 갑론을박 하다가 13개 주 중에서 메릴랜드를 포함한 남부 여러 주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기 위해 잘려 버려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토마스 제퍼슨은 자기 딸 또래의 샐리 헤밍스라는 흑인여성을 데리고 살아 헤밍스의 소생들이 제퍼슨의 피를 받았다는 설은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부터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고 아직도 헤밍스의 후손들은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이었지만 죽으면서 자기 소유의 노예들을 자유롭게 해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토마스 제퍼슨은 죽으면서도 흑인들에 대해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죽은 것은 독립기념일 제 50주년인 1826년 7월4일이었는데 그의 유서로 자유를 준 노예라고는 모두 헤밍스 쪽의 사람들인 5명뿐이었다. 그 중에 샐리 헤밍스는 포함되지 않았고 제퍼슨의 딸이 나중에야 샐리 헤밍스를 노예상태에서 풀어주었다. 1827년 1월달 몬티첼로의 잔디밭에서 토마스 제퍼슨의 130명 노예들이 가구와 농기구들과 함께 경매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팔려갔다. 제퍼슨이 몬티첼로를 지으면서, 또 버지니아 대학을 설립하면서 아무리 빚을 많이 지고 거의 파산상태로 죽었다고는 하지만 독립선언문의 현란한 표현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현실이었다.
그에 비하면 같은 독립선언문의 공동서명자 중 한 사람이며 워싱턴 다음으로 대통령이 되어 제퍼슨의 선임자였던 존 아담스는 “모든 사람”의 정의 가운데는 흑인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며 비교적 언행이 일치된 사람이었다. 매사추세츠 주에서 하바드 출신 변호사이고 조그만 지주이기도 했던 아담스는 생전에 노예라고는 하나도 소유치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독립운동 하던 기간 그의 부인 아비게일이 농장을 돌보는데 하인들과 하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은 자유인의 신분이었지 노예는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독립기념일 50주년에 몇 시간 차이로 임종을 맞은 두 사람은 독립운동 시절 여덟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척 가까운 사이였고 연장자인 아담스가 주영공사, 그리고 제퍼슨이 주불공사 시절 특히 그러했었다. 그 후 정적이 되어 사이가 나빴다가 각기 백악관을 떠난 다음에야 친교가 회복되어 죽기 직전까지 편지들이 오갔지만 아담스의 노예제도에 대한 혐오감이 제퍼슨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노예제도에 대한 남북의 이견을 두 사람이 상징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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